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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배제는 운동공간이 아니라 접수대에서 이미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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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63회 작성일 26-03-2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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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이디다 칼럼니스트】장애인을 운동시설에서 거절하는 순간은 대개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지점, 즉 접수대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많은 경우 장애인은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한 번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그 멈춤은 대개 눈에 보이는 장벽 때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다.

운동시설을 찾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다. 시설을 검색하고, 전화를 걸어 프로그램을 문의하고, 시간과 비용을 확인하는 일련의 절차가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과정이지만, 장애인에게 이 과정은 종종 첫 번째 문턱이 된다. 그 문턱은 건물 입구의 계단이나 경사로가 아니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첫 응대의 태도다.


장애인 배제는 운동공간이 아니라 접수대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디다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장면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전화 상담을 받던 직원이 잠시 말을 멈추고 “이건 제가 바로 답을 드리기 어렵네요”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거의 정해져 있다.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 매우 정중하고 중립적인 표현처럼 들린다. 상대의 상황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 문장은 종종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지금 이 공간은 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말이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망설임의 표현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장애인은 그 망설임을 생각보다 빠르게 감지한다.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이 공간이 자신을 이용자로 상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부분 첫 통화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다.

첫 응대는 단순한 안내가 아니다

많은 시설에서 접수대의 역할을 단순한 안내 창구로 이해한다. 프로그램 시간이나 비용을 설명하고 예약을 잡는 기능적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첫 응대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이 공간이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다. 내가 이곳에서 문제로 취급되지 않을지, 실제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다양한 신호를 읽어낸다.  어떤 질문이 먼저 나오는지, 어떤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추는지, 특정 단어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선택하는지와 같은 작은 변화들이다. 특히 이런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의 목소리 변화는 매우 강하게 전달된다.

“장애가 있으시다고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목소리의 속도나 톤이 달라진다면 이미 응대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장애인은 이런 변화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감지한다.

접수 직원은 왜 망설일까

그렇다면 접수 직원의 이러한 망설임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개인의 편견 때문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실제 현장에서 접수 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서 쉽게 멈춰 선다.

· 어떤 정보까지 물어보는 것이 적절한지
· 바로 수업 연결이 가능한지
· 강사에게 먼저 확인해야 하는 상황인지
· 보호자 동행 여부를 어떻게 안내해야 하는지

이러한 기준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직원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개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이 문장은 의도와 상관없이 시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그 순간 자신이 일반적인 이용자가 아니라 특별히 검토가 필요한 존재로 분류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질문의 순서가 경험을 바꾼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접수대에서 이루어지는 질문의 순서다. 많은 시설에서 첫 질문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어떤 장애이신가요?”
“혼자 이동이 가능하신가요?”

“보호자 동행이 필요하신가요?”

이러한 질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운동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환영의 문장 없이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안내가 아니라 심문처럼 들리기 쉽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이 먼저 제시된다면 분위기는 전혀 달라진다.

“운동을 시작해보고 싶으시군요.”
“저희 공간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함께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먼저 나오면 이후의 질문은 자연스러운 협의의 과정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이 생략된 채 정보 확인이 먼저 시작되면, 그 질문들은 이용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순간 장애인은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이용자가 아니라, 허용 여부를 평가받는 사람처럼 위치 지워지게 된다.

연결되지 않는 문의는 곧 거절이다

시설에서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거절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연결이 안 됐을 뿐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경험에서는 연결되지 않은 문의가 곧 거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답변이 늦어지고,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고, 명확한 안내 없이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연락하지 않는다. 다른 시설을 찾거나, 아예 시도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시설 내부에서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접수 단계에서 이루어진 문의가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배제는 명시적인 거절의 형태가 아니라, 연결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경험으로 남는다.

접수대는 공간의 태도를 보여준다

접수대는 단순한 행정 창구가 아니다. 그곳은 공간의 태도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장소다. 이 공간이 누구를 기본 이용자로 상정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준비되어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이용자를 어떻게 맞이하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공간과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대화가 끝나는 공간은 같은 시설이라도 전혀 다른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차이는 시설 규모나 장비보다 운영의 기준에서 만들어진다.

실패는 접수대에서 시작된다

장애인 이용과 관련된 많은 실패는 실제 수업 현장이 아니라 접수대에서 이미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배리어프리는 강사의 전문성이나 프로그램 구성 이전에, 첫 응대의 구조와 연결 방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질문을 먼저 할 것인지, 어디까지 즉시 답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연결해야 하는지와 같은 기준이 마련되어 있을 때 비로소 접수대의 작은 망설임이 참여의 단절로 이어지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장애 유형을 묻지 않는 것’이 왜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침묵이 현장에서 어떤 오해를 낳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공간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접수대의 첫 문장은 그 공간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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