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언론보도

“개의 생활에서 인간으로의 회복이 바로 장애인의 해방”

페이지 정보

작성자 햇빛촌 조회 11,848회 작성일 24-10-14 10:54

본문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리뷰
기자명칼럼니스트 서인환 입력 2024.10.11 16:49 수정 2024.10.11 16:51

특수교사가 장애 관련 문학작품을 쓰기에는 좋은 위치에 있다. 장애인과 생활하면서 잘 알고 있다는 장점이 있고, 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른 작가와는 다르다는 점이 있다. 특수교사는 장애인을 악인이나 벌로 발생한 것으로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거나 재능을 가진 동등한 인간으로 보거나 권리를 주장하거나, 스스로 주체적 인간상으로 표현하거나 사회 환경적 문제를 부각시키는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특수교사 중에서 작가 활동을 하는 작가는 송명숙 작가처럼 수필로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직접 주장의 글을 쓰는 작가도 있고, 김혜은 작가처럼 문학작품으로 동화를 쓰기도 하고, 공진하 작가처럼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선택하는 작가도 있다.

공진하 작가는 “청아청아 눈을 떠라”에서 고전문학 ‘심청전’에서 내용 비틀기를 통해 눈을 떠야 하는 것은 심학규가 아니라 딸이라고 설정한다. 기존 작품을 달리 해석하는 모티브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림에서 문학작품의 모티브를 제공 받기도 한다.

E. L.코닉스버그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작품을 썼다. 다빈치는 소매치기이며 못생긴 살라이를 제자로 삼는다. 성장해도 경쟁자가 될 수 없으며, 다름에서 예술적 균형을 찾기 위해서다. 예술은 삶인데, 다빈치는 영광이나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초상화 등에는 관심도 없으며, 좋은 작품을 만들지도 못한다. 다빈치 후원자인 일 모로 공작의 부인인 베아트리체는 못생겼고, 잘생긴 언니로 인해 둘째, 남편의 애인으로 인해서도 둘째 자리가 된다.

다빈치는 후원자의 요청에 의한 의무감으로 충실하게 그림을 그리지만, 예술성은 혼을 넣는 그림을 추구한다.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을 가졌던 베아트리체 부인은 초상화에 관심이 없다. 많은 귀족들이 그림을 신청했으나 피하기만 하던 다빈치가 어느 농부의 부인을 보고 죽은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며 ‘모나리자’를 그렸다는 이야기다. 스토리와 예술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다.
라헐 판 코에이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열살 때 오스트리아로 이사를 했다. 빈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작가 활동을 하면서 직접 장애인복지사업도 했다. 그는 장애인의 자립이나 권리 중심의 주장은 하지 않아도 인간 존엄과 장애인도 무한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 바르톨로메는 곱추로 태어나 시골에서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사람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며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아버지가 공주의 마부인데,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사를 하면서 바르톨로메는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아버지는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놀림이나 가족의 흠이 될까 숨긴다. 누나의 약혼도 바르톨로메로 인해 깨어진 적이 있다.

바르톨로메는 저항감을 가지지만 순종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형이 전해주는 소식 외에 도시에 대한 호기심을 풀 방법이 없다. 형이 ‘엘 프리모’라는 난쟁이가 왕의 서기라는 말을 듣고 자기도 글을 배우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까 상상한다. 형의 도움으로 수도원에 가서 글을 배우게 되는데, 형이 제빵 도제로 집을 떠나자 누나가 세탁물 항아리에 숨겨 글자 공부하러 갔다가 항아리를 떨어뜨려 사람들에게 난쟁이가 드러나게 된다. 마침 5살 공주가 길을 지나다가 발견하고 노리개 인간개로 삼는다.

바르톨로메는 거역하지 못하고 개 시늉을 하며 외로운 공주 노리개가 되는데, 분장을 맡은 벨라스케스 제자들과 친분을 가지고 지내다가 자신의 그림 재능을 알게 된다. 투우장에서 다른 난쟁이들의 질투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을 본 아버지가 아들 바르톨로메를 집으로 데리고 올 궁리를 하게 된다. 권력에 무기력하고 장애 가족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잘못인 자각하는 계기다. 본능적 가족애가 인간성을 회복한다. 잘못된 인식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서 원래의 것을 가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강아지를 사서 훈련을 시켜 마술을 한다며 개와 바르톨로메를 바꿔치기를 하여 궁 밖으로 아들 바르톨로메는 나오게 되고, 바르톨로메는 화가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벨라스케스는 처음에는 인간개의 바르톨로메를 그렸다가, 그림을 수정해서 강아지가 다 자란 모습의 개로 그림을 수정한다.

바르톨로메 엄마는 매질을 하며 기어다니는 바르톨로메를 ‘너는 개가 아니라 인간’이라며 훈육을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감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비밀리에 글을 배우러 가는 것을 겨우 허락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부모의 한계와 정보 부족으로 방황함을 묘사하고 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평소 소외 받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숨겨져 살아야 하는 몸으로는 재능도 숨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몸을 드러내면 재능도 드러난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속에 숨어 있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회화라고 벨라스케스는 말한다.

장애인들은 원시사회에서는 장애란 의미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공동생활의 일원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방임의 시대를 거쳐 시설을 만들어 시혜하는 보호의 시대가 있었다. 작품의 배경은 중세시대인 1600년대 인물이니 보호시대 정도의 장애관을 가졌을 것이다. 종교적 의무인 보호와 멸시가 동시에 존재했다.

하지만 작가는 현대 인물이니 당시의 장애관을 보여주면서 현대의 패러다임을 담고 있다. 왕의 서기로 장애인이 일한다는 것은 장애 영웅을 말하는 것으로 자아실현시대인 근대의 모습이다. 개와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는 해방은 마술과도 같은 일이다.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는 모습은 정보를 얻고 장애인이 정식 화가가 되지 못해도 능력은 인정받아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시대적 제도에 순응하면서도 자신도 인간다운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다. 화가가 되는 결말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즐긴다는 이야기다.

시골 고향과 도시가 장애에 대하여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웃과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시골에서는 숨기지는 않는다. 도시라는 문화가 장애를 일으킨다. 발달장애인이 옛날 같으면 조금 모자란다고는 여기지만, 숨기는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기술, 출세, 권위, 부, 가부장제 앞에서 장애는 거부당하는 존재다. 개의 생활에서 인간으로의 회복이 바로 장애인의 해방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2005년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출판사 사계절은 욜로욜로 시리즈를 내면서 표지를 바꾸어 2017년 재출간한다. 욜로는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은 오직 한 번뿐)는 국립국어원에서 오늘살이로 대체어를 정했지만,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유일함(유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서인환 iwser@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