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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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11,844회 작성일 24-10-14 11:27본문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기자명기고/김유리 입력 2024.10.11 16:04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 2부" 시작에 앞서 야구장에 함께 간 다/함께/사/세 모임원들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뇌병변장애로 인해 움직임에 불편함을 겪는 준희, 시각장애로 인해 앞을 보는 일이 어려운 성규와 동우, 허리디스크로 장시간 걷는 일에 불편함을 겪는 비장애인 우현, 안경을 써야만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비장애인 현균, 그리고 발달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느린학습자라는 별명이 붙은 나, 유리이다. 4편으로 나누어 연재 예정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는 바로 이 6명의 모임원들의 이야기이다.
자신만 믿고 길을 따라 오라는 준희의 말을 들은 순간 현균과 함께 하는 다른 모임에서 2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지도 보고 길찾기를 했던 날이 떠올랐다. 현균은 나에게 길찾기를 맡기면서도 자신도 지도앱을 보았다. 나는 ‘현균이도 지도앱을 보고 있으면 내가 길을 잘못 들 때마다 현균이가 바로 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얼른 길찾기에 익숙해져서 모임원들이 나를 믿고 따라올 수 있게 해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모임에서 내가 길찾기를 담당한지 2년이 넘은 지금, 현균은 나와 길을 다닐 때 지도앱을 보지 않는다. 현균은 나와 다닐 때 지도앱을 보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지도보고 길찾기에 익숙해졌다.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활동으로 롯데콘서트홀에 갈 때도 모임원들에게 내가 길 안내를 했다. 하지만 고척스카이돔에 가는 날은 야구장에 입장하는 방법은 물론, 야구장 근처 카페도 전혀 찾아보지 않았다. 이 날은 준희만 따라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길을 잘 찾는 사람을 쫓아 다니는게 편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롯데콘서트홀 방문 때는 내가 길 안내를 자처했다. 그 까닭은 길찾기에 자신감도 붙었고 모임 진행자로서 책임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도 지도 보고 길 찾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모임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자리잡고 있었다. 길 안내를 잘 하기 위해 미리 롯데콘서트홀로 가는 동선을 파악해 보기도 했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촉박해 많이 서두르긴 했지만 길 안내를 무사히 마쳤다. 나도 길 안내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으니 더 이상의 호기는 부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전국의 야구장을 다 돌아볼 정도로 야구광인 준희 앞에서 나서기도 민망했다.
준희 뒤를 열심히 쫓아가니 우리가 야구경기 시작 전에 가 있기로 한 배스킨라빈스가 보였다. 네이버지도앱 상으로는 고척스카이돔에서 6.8km의 거리를 걸어가야 나올거라 했던 배스킨라빈스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살펴보니 네이버지도앱 상의 오류라는게 밝혀졌다. 165m밖에 안되는 거리를 6.8km라고 안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준희는 고척스카이돔 주변 배스킨라빈스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았는데, 나는 왜 잘 모르지?’라며 자책을 했었다. 당시에는 내 장애 탓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준희는 고척스카이돔 주변에 대해서 잘 알았던 반면, 나는 초행길이었다. 하필 그 순간 지도앱 오류를 경험했을 뿐이다. 거리가 가까운 순으로 정렬했을 때 6.8km나 되는 거리의 점포가 검색된다면, 굳이 눌러서 확인해보지 않을 사람들이 내가 아니어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준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준희는 길 안내를 해 준 경험이 이번이 처음일까? 나는 모임에서 처음 길 안내를 맡았을 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었다. 준희는 어땠을까? 이 날 야구경기 관람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슬며시 물어보니, 준희는 다른 사람에게 길 안내를 해 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길 안내를 자주 해 준다고 한다. 알고보니 가족들이 준희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할 만큼 준희는 길을 잘 찾는 편이었다. 길 안내는 늘 하던 일이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처음 했어도 생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외부활동 때 길을 잘 찾는 준희 뒤만 따라다니면 나는 길을 미리 찾아보지 않아도 돼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병변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함께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지적장애인이 걸음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인보다 앞장 서서 걷거나 뇌병변장애인의 거동을 도와줄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날은 뇌병변장애인인 준희가 앞장 서 걸으며 지적장애인인 나에게 길 안내를 해 주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길 안내를 하는 지적장애인 유리를 뒤따르며 지도를 안봐도 돼서 편하다고 이야기하는 비장애인 현균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의 편견을 깨뜨려 가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배스킨라빈스에는 키오스크가 있었다. 나는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주문해야 할 메뉴가 많을 경우 한번에 다 외워서 직원에게 말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키오스크를 이용해 준희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먼저 고르도록 했다. 키오스크 화면에서 메뉴를 본 준희는 아이스크림보다 음료를 더 먹고 싶었나보다. 준희가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하면 통에 담아주는 아이스크림을 고르려고 했다. 준희가 음료를 골라서 나도 똑같이 음료를 골랐다.
웬만해선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데, 이 날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제 과정에서 신용카드를 꽂았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 해봐도 되지 않았다. 뒤에 줄을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반대방향으로 꽂아야 한다고 알려주셔서 카드 방향을 바꾸니 그제서야 결제가 되었다. 키오스크마다 카드를 꽂는 방향이 다른건지, 방향은 같은데 내가 착각하고 반대방향으로 꽂았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음료를 마시며 준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지난 모임에서 우현은 사회복지사가 꿈인 준희에게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해준 적이 있었다. 우현은 준희에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나도 우현처럼 준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준희에게 내가 한 말은 “사회복지학 강의 듣는다고 하셨는데, 신청하셨어요?” “준희님은 잘 하실거예요.”와 같은 말이였다. 나는 깊이 있는 대화를 끌어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깊이 있는 답변도 잘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 할 때도 많다. 여기서 또 한번 미안해졌다. ‘내가 아닌 다른 모임원들과 있었다면 취업상담,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을 마치고 이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준희에게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나와의 대화가 지루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봤다. 가벼운 이야기를 해도 즐겁다는 말을 해 주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내게 발달장애가 있어서 정보전달을 잘 못해주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현은 “유리님이 사회복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것은 유리님이 사회복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지 유리님의 장애탓이 아니예요.”라고 말했다. 우현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문제든 장애탓으로 돌리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준희와 야구장으로 가기 전 잠시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사서 가기로 했다. 이 때 성규와 현균을 우연히 마주쳐서 깜짝 놀랐다. 야구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데 야구장 반대편 방향으로 어디를 가는지 궁금했다.
어디 가는 줄도 모르면서 현균에게 “나도 따라갈까?”라고 말했다. 우리끼리라도 일찍 야구경기를 보고 있으라는 현균의 말에 나는 현균과 성규에게 ‘이따가 보자’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고 준희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현균과 성규가 나란히 걷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오른편에서 걷는게 좋다”고 했던 성규의 말이 떠올랐다. 현균이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현균과 성규가 함께 걸을 때 성규가 다른 행인들과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현균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이 날은 성규를 만나자마자 “제가 오른편에 서서 걸을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야구경기 시작을 앞두고 있어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것 없이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을 막기 위해 현균이 성규에게 말을 하고 성규의 왼편에 서서 걷거나 앞장서서 걷기도 하는 등 서로 대화를 하며 걸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행인들과 부딪힘 없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지난 5월부터 모임을 진행해 오면서 현균과 성규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성규는 현균에게 자신의 장애 정도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현균은 성규의 장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번에 성규와 현균이 함께 이동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쿵짝이 잘 맞는 환상의 팀’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서울청년센터 금천에서 모임을 마친 후, 나와 성규 단 둘이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지하철을 함께 타고 간 경험이 있었다. 평상시 성규는 7호선을 이용하는데, 이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나와 같은 1호선을 이용했다.
성규는 나에게 1호선으로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물었다. 쑥스러워서 그랬던 것인지 잘못된 안내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쪽으로 가면 되요” “저쪽이예요.”라고 구체적인 설명 없이 손짓으로만 안내했다. 몇 달이나 지난 지금도 마음이 쓰이는데 ‘성규와도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면 성규에게도 역시 길 안내를 잘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준희가 나에게 “성규님이랑 현균님은 어디 가는거예요?” 라고 물었다. 나도 잘 몰라서 대답을 못해줬다. ‘미리 주문해 놓은 닭강정과 김밥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건 편의점에 들어선 직후였다.
이날은 배스킨라빈스와 편의점에서 나와 준희가 번갈아가며 음료를 샀다. 또한 배스킨라빈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채고, 야구경기 시작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음료잔이 비자마자 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나의 사회성이 향상되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르고 야구장으로 향하는 동안 성규와 현균은 주문해둔 닭강정과 김밥을 픽업하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이 날 모임을 마친 후 성규로부터 음식점에서 주문번호를 확인해주지 않아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식이 나왔다는 것을 알리는 전광판 등이 없어서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온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또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도 불편했다고 한다. 성규가 키오스크를 이용해 오니기리라는 일본식 주먹밥을 주문할 때, 현균이 옆에서 성규가 주문하고자 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개수를 입력했다고 한다.
나도 이날 배스킨라빈스에서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어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성규는 키오스크에서 음성인식이 되지 않아 도움을 받아야 했고, 나는 키오스크 사용법이 매장마다 달라서 도움을 받아야 했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가 개발되는 날은 언제쯤 오는 걸까?
편의점에서 야구장까지 준희를 앞장 세우고 나는 준희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지난 모임에서 롯데콘서트홀에 갔을 때는 공연시간에 맞춰 가야 했기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당시 내가 길 안내를 했었는데 급한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고, 준희는 내 걸음 속도를 쫒아가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다. 평소 준희는 자신에게 맞춰서 천천히 걸어가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자신과 발걸음을 맞추어 걸어주어서 좋았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도 ‘나 혼자 잘났다고 빨리 가지 말고, 발을 맞추어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준희를 쫓아 고척스카이돔 안으로 들어갔다. 모임 일주일 전에도 친구와 함께 고척스카이돔에 왔다는 준희 덕분에 하나도 헤매지 않고 좌석을 찾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야구장 안에서 좌석을 찾아가는 길이 엄청 복잡한가보다. 준희는 외야와 내야 게이트가 분리되어 있어서 길을 찾을 때 헤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창원에 있는 야구장의 경우 한 게이트로 들어가면 야구장에 있는 전 구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준희는 고척스카이돔도 창원에 있는 야구장처럼 어느 입구든 야구장 내 전 구역으로 연결된다면 내가 혼자 야구장에 가더라도 쉽게 좌석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야구’에 ‘야’자도 관심이 없는 내가 혼자서 고척스카이돔에 갈 일은 없을듯하다. 하지만 야구에 관심이 많지만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서 야구장 안 어느 구역이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경기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장 안에서도 준희는 엘레베이터를 찾지 않고 계단을 이용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302구역 쪽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했다. 3층이나 되는 계단을 난간을 붙잡고 한 발자국씩 위태위태하게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는 뒤에서 준희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 때는 이미 계단 절반 이상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 상황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준희를 놔두고 엘리베이터를 찾아보겠다며 내가 다시 내려가는 행동을 보이면, 준희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더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우리가 앉을 자리는 3층 입구에서도 계단을 타고 한참 더 내려가야 했다. 우리가 예매한 자리는 유리 펜스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실내 야구장은 난생 처음 와봤지만, 내려가야 할 계단이 너무 많아서 계단에만 집중하느라 야구장 분위기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혹여나 준희가 넘어지지 않을까 준희의 속도에 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떼었다.
3부에는 다양한 장애유형을 가진 다/함께/사/세 모임원들이 고척스카이돔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며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이 글은 김유리 님이 다/함께/사/세 모임원들과 함께 작성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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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유리 uri2727@naver.com
기자명기고/김유리 입력 2024.10.11 16:04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 2부" 시작에 앞서 야구장에 함께 간 다/함께/사/세 모임원들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뇌병변장애로 인해 움직임에 불편함을 겪는 준희, 시각장애로 인해 앞을 보는 일이 어려운 성규와 동우, 허리디스크로 장시간 걷는 일에 불편함을 겪는 비장애인 우현, 안경을 써야만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비장애인 현균, 그리고 발달장애로 인해 사회적으로 느린학습자라는 별명이 붙은 나, 유리이다. 4편으로 나누어 연재 예정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긴 야구경기 관람기"는 바로 이 6명의 모임원들의 이야기이다.
자신만 믿고 길을 따라 오라는 준희의 말을 들은 순간 현균과 함께 하는 다른 모임에서 2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지도 보고 길찾기를 했던 날이 떠올랐다. 현균은 나에게 길찾기를 맡기면서도 자신도 지도앱을 보았다. 나는 ‘현균이도 지도앱을 보고 있으면 내가 길을 잘못 들 때마다 현균이가 바로 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얼른 길찾기에 익숙해져서 모임원들이 나를 믿고 따라올 수 있게 해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모임에서 내가 길찾기를 담당한지 2년이 넘은 지금, 현균은 나와 길을 다닐 때 지도앱을 보지 않는다. 현균은 나와 다닐 때 지도앱을 보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지도보고 길찾기에 익숙해졌다.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활동으로 롯데콘서트홀에 갈 때도 모임원들에게 내가 길 안내를 했다. 하지만 고척스카이돔에 가는 날은 야구장에 입장하는 방법은 물론, 야구장 근처 카페도 전혀 찾아보지 않았다. 이 날은 준희만 따라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길을 잘 찾는 사람을 쫓아 다니는게 편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롯데콘서트홀 방문 때는 내가 길 안내를 자처했다. 그 까닭은 길찾기에 자신감도 붙었고 모임 진행자로서 책임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도 지도 보고 길 찾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모임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자리잡고 있었다. 길 안내를 잘 하기 위해 미리 롯데콘서트홀로 가는 동선을 파악해 보기도 했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촉박해 많이 서두르긴 했지만 길 안내를 무사히 마쳤다. 나도 길 안내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으니 더 이상의 호기는 부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전국의 야구장을 다 돌아볼 정도로 야구광인 준희 앞에서 나서기도 민망했다.
준희 뒤를 열심히 쫓아가니 우리가 야구경기 시작 전에 가 있기로 한 배스킨라빈스가 보였다. 네이버지도앱 상으로는 고척스카이돔에서 6.8km의 거리를 걸어가야 나올거라 했던 배스킨라빈스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살펴보니 네이버지도앱 상의 오류라는게 밝혀졌다. 165m밖에 안되는 거리를 6.8km라고 안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준희는 고척스카이돔 주변 배스킨라빈스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았는데, 나는 왜 잘 모르지?’라며 자책을 했었다. 당시에는 내 장애 탓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준희는 고척스카이돔 주변에 대해서 잘 알았던 반면, 나는 초행길이었다. 하필 그 순간 지도앱 오류를 경험했을 뿐이다. 거리가 가까운 순으로 정렬했을 때 6.8km나 되는 거리의 점포가 검색된다면, 굳이 눌러서 확인해보지 않을 사람들이 내가 아니어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준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준희는 길 안내를 해 준 경험이 이번이 처음일까? 나는 모임에서 처음 길 안내를 맡았을 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었다. 준희는 어땠을까? 이 날 야구경기 관람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슬며시 물어보니, 준희는 다른 사람에게 길 안내를 해 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길 안내를 자주 해 준다고 한다. 알고보니 가족들이 준희에게 길을 물어보기도 할 만큼 준희는 길을 잘 찾는 편이었다. 길 안내는 늘 하던 일이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처음 했어도 생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함께/사/세 커뮤니티 외부활동 때 길을 잘 찾는 준희 뒤만 따라다니면 나는 길을 미리 찾아보지 않아도 돼서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병변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함께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지적장애인이 걸음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인보다 앞장 서서 걷거나 뇌병변장애인의 거동을 도와줄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날은 뇌병변장애인인 준희가 앞장 서 걸으며 지적장애인인 나에게 길 안내를 해 주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길 안내를 하는 지적장애인 유리를 뒤따르며 지도를 안봐도 돼서 편하다고 이야기하는 비장애인 현균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의 편견을 깨뜨려 가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배스킨라빈스에는 키오스크가 있었다. 나는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주문해야 할 메뉴가 많을 경우 한번에 다 외워서 직원에게 말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키오스크를 이용해 준희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먼저 고르도록 했다. 키오스크 화면에서 메뉴를 본 준희는 아이스크림보다 음료를 더 먹고 싶었나보다. 준희가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하면 통에 담아주는 아이스크림을 고르려고 했다. 준희가 음료를 골라서 나도 똑같이 음료를 골랐다.
웬만해선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데, 이 날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제 과정에서 신용카드를 꽂았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 해봐도 되지 않았다. 뒤에 줄을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반대방향으로 꽂아야 한다고 알려주셔서 카드 방향을 바꾸니 그제서야 결제가 되었다. 키오스크마다 카드를 꽂는 방향이 다른건지, 방향은 같은데 내가 착각하고 반대방향으로 꽂았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음료를 마시며 준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지난 모임에서 우현은 사회복지사가 꿈인 준희에게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해준 적이 있었다. 우현은 준희에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나도 우현처럼 준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준희에게 내가 한 말은 “사회복지학 강의 듣는다고 하셨는데, 신청하셨어요?” “준희님은 잘 하실거예요.”와 같은 말이였다. 나는 깊이 있는 대화를 끌어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깊이 있는 답변도 잘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 할 때도 많다. 여기서 또 한번 미안해졌다. ‘내가 아닌 다른 모임원들과 있었다면 취업상담,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을 마치고 이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준희에게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나와의 대화가 지루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봤다. 가벼운 이야기를 해도 즐겁다는 말을 해 주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내게 발달장애가 있어서 정보전달을 잘 못해주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현은 “유리님이 사회복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것은 유리님이 사회복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지 유리님의 장애탓이 아니예요.”라고 말했다. 우현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문제든 장애탓으로 돌리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준희와 야구장으로 가기 전 잠시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사서 가기로 했다. 이 때 성규와 현균을 우연히 마주쳐서 깜짝 놀랐다. 야구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데 야구장 반대편 방향으로 어디를 가는지 궁금했다.
어디 가는 줄도 모르면서 현균에게 “나도 따라갈까?”라고 말했다. 우리끼리라도 일찍 야구경기를 보고 있으라는 현균의 말에 나는 현균과 성규에게 ‘이따가 보자’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고 준희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현균과 성규가 나란히 걷는 걸 보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오른편에서 걷는게 좋다”고 했던 성규의 말이 떠올랐다. 현균이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현균과 성규가 함께 걸을 때 성규가 다른 행인들과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현균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이 날은 성규를 만나자마자 “제가 오른편에 서서 걸을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야구경기 시작을 앞두고 있어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것 없이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을 막기 위해 현균이 성규에게 말을 하고 성규의 왼편에 서서 걷거나 앞장서서 걷기도 하는 등 서로 대화를 하며 걸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행인들과 부딪힘 없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지난 5월부터 모임을 진행해 오면서 현균과 성규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성규는 현균에게 자신의 장애 정도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현균은 성규의 장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번에 성규와 현균이 함께 이동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쿵짝이 잘 맞는 환상의 팀’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서울청년센터 금천에서 모임을 마친 후, 나와 성규 단 둘이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지하철을 함께 타고 간 경험이 있었다. 평상시 성규는 7호선을 이용하는데, 이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나와 같은 1호선을 이용했다.
성규는 나에게 1호선으로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 물었다. 쑥스러워서 그랬던 것인지 잘못된 안내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쪽으로 가면 되요” “저쪽이예요.”라고 구체적인 설명 없이 손짓으로만 안내했다. 몇 달이나 지난 지금도 마음이 쓰이는데 ‘성규와도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면 성규에게도 역시 길 안내를 잘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준희가 나에게 “성규님이랑 현균님은 어디 가는거예요?” 라고 물었다. 나도 잘 몰라서 대답을 못해줬다. ‘미리 주문해 놓은 닭강정과 김밥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건 편의점에 들어선 직후였다.
이날은 배스킨라빈스와 편의점에서 나와 준희가 번갈아가며 음료를 샀다. 또한 배스킨라빈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채고, 야구경기 시작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음료잔이 비자마자 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나의 사회성이 향상되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음료를 고르고 야구장으로 향하는 동안 성규와 현균은 주문해둔 닭강정과 김밥을 픽업하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이 날 모임을 마친 후 성규로부터 음식점에서 주문번호를 확인해주지 않아 불편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식이 나왔다는 것을 알리는 전광판 등이 없어서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온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또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도 불편했다고 한다. 성규가 키오스크를 이용해 오니기리라는 일본식 주먹밥을 주문할 때, 현균이 옆에서 성규가 주문하고자 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개수를 입력했다고 한다.
나도 이날 배스킨라빈스에서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어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성규는 키오스크에서 음성인식이 되지 않아 도움을 받아야 했고, 나는 키오스크 사용법이 매장마다 달라서 도움을 받아야 했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키오스크가 개발되는 날은 언제쯤 오는 걸까?
편의점에서 야구장까지 준희를 앞장 세우고 나는 준희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지난 모임에서 롯데콘서트홀에 갔을 때는 공연시간에 맞춰 가야 했기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당시 내가 길 안내를 했었는데 급한 마음에 걸음이 빨라졌고, 준희는 내 걸음 속도를 쫒아가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다. 평소 준희는 자신에게 맞춰서 천천히 걸어가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자신과 발걸음을 맞추어 걸어주어서 좋았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도 ‘나 혼자 잘났다고 빨리 가지 말고, 발을 맞추어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준희를 쫓아 고척스카이돔 안으로 들어갔다. 모임 일주일 전에도 친구와 함께 고척스카이돔에 왔다는 준희 덕분에 하나도 헤매지 않고 좌석을 찾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야구장 안에서 좌석을 찾아가는 길이 엄청 복잡한가보다. 준희는 외야와 내야 게이트가 분리되어 있어서 길을 찾을 때 헤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창원에 있는 야구장의 경우 한 게이트로 들어가면 야구장에 있는 전 구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준희는 고척스카이돔도 창원에 있는 야구장처럼 어느 입구든 야구장 내 전 구역으로 연결된다면 내가 혼자 야구장에 가더라도 쉽게 좌석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야구’에 ‘야’자도 관심이 없는 내가 혼자서 고척스카이돔에 갈 일은 없을듯하다. 하지만 야구에 관심이 많지만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서 야구장 안 어느 구역이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경기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장 안에서도 준희는 엘레베이터를 찾지 않고 계단을 이용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302구역 쪽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했다. 3층이나 되는 계단을 난간을 붙잡고 한 발자국씩 위태위태하게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는 뒤에서 준희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 때는 이미 계단 절반 이상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 상황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준희를 놔두고 엘리베이터를 찾아보겠다며 내가 다시 내려가는 행동을 보이면, 준희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더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다.
우리가 앉을 자리는 3층 입구에서도 계단을 타고 한참 더 내려가야 했다. 우리가 예매한 자리는 유리 펜스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실내 야구장은 난생 처음 와봤지만, 내려가야 할 계단이 너무 많아서 계단에만 집중하느라 야구장 분위기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혹여나 준희가 넘어지지 않을까 준희의 속도에 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떼었다.
3부에는 다양한 장애유형을 가진 다/함께/사/세 모임원들이 고척스카이돔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며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이 글은 김유리 님이 다/함께/사/세 모임원들과 함께 작성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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