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쥐어주는 김미애 의원, 국회 안의 시설 옹호 끝내고 탈시설 입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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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1,917회 작성일 26-02-23 11:12본문
마침내 시설장이 구속됐다. 2026년 2월 19일, 법원은 색동원 시설장을 증거인멸·도망 염려를 이유로 구속했다. 이 구속은 색동원에서 벌어진 인권참사가 얼마나 중대하고 긴급한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다.
그런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김미애 의원은, 이 중대한 인권참사 앞에서 홀로 역행하고 있다. 김미애 의원이 국회에 제일 먼저 불렀어야 했던 건 피해자다.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 기록하고 지원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그것이 국회의 첫 번째 의무였다. 그러나 김미애 의원이 국회 안으로 먼저 불러들인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시설협회였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국회로 들어올 문을 닫아 걸고, 시설세력이 국회 마이크를 잡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색동원에서 벌어진 일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권력의 비대칭과 통제, 침묵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짓밟는지 드러난 인권참사로 그간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참사는 수십년에 걸쳐 수도 없이 반복되어왔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알아야 한다. 문제는 “나쁜 개인”이 아니라 시설이라는 구조다. 시설은 범죄를 숨기고,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책임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수없이 인권참사를 반복해왔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구조를 끊어내는 법이다.
그렇기에 지금 김미애 의원이 시설협회와 국회 안에서 벌이는 것은 토론회가 아니다. 시설협회를 국회로 초대해 “시설도 억울하다”는 말이 떠돌게 만들고, 책임을 흐리고, 입법과 제도개선을 늦추는 면피의 장이다. 어떻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라는 의원이 참사의 현장 앞에서 시설을 옹호하는 세력을 국회로 불러 면죄부를 쥐어준단 말인가. 국회 안에서는 시설세력이 말하고, 국회 밖에서는 피해자가 남겨지는 장면을, 국회의원이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의 목소리가 국회로 들어올 자리를 시설세력이 점거하는 순간, 국회는 대책기관이 아니라 시설권력의 면죄부 기관으로 전락한다.
이 참사 앞에서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탈시설이 명시된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는 것.
그뿐이다.
색동원 참사가 증명한 건 명백하다. “시설을 더 잘 관리하자”는 말로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 ‘관리’가 반복될수록 시설은 더 안전한 공간이 되는 게 아니라, 더 정교한 통제와 더 단단한 침묵의 구조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권리로서의 탈시설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탈시설을 국가의 의무로 못 박아, ‘특권’이나 ‘시범사업’이 아니라 권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시설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주거·활동지원·소득·의료·지역사회 지원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실행 장치다.
이 두 법이 없으면, 피해자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긴급조치”라는 임시방편 속에서 떠돌고, 가해 구조는 “재발방지”라는 말 뒤에 숨어 다음 인권참사를 준비한다. 지금 국회가 방치하는 것은 법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존엄이다.
그러나 김미애 의원은 이 필수 입법을 외면한 채, 국회 안에서 시설세력의 손을 맞잡는다. 국회 안에서는 “그럼에도 시설이 필요하다”는 말이 안전하게 유통되고, 국회 밖에서는 피해자와 시설수용생존자들이 “그러므로 탈시설이 필요하다”는 말을 추위와 폭력, 무시를 견디며 외치고 있다. 국회 안에는 시설 세력이 국회의원의 비호를 받으며 당당히 마이크를 잡고 있고, 국회 밖에는 피해자가 다른 시설수용생존자들의 손을 맞잡고, ‘시설 밖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며 서 있다. 국회 안에는 인권참사를 만들어낸 시설 수용을 정당화하는 토론회가 진행되고, 국회 밖에는 인권참사를 막을 유일한 해법인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아직도’ 방치돼 있다. 이것이 김미애 의원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김미애 의원이 국회 안에서 시설세력과 함께 시설을 옹호하는 말을 쌓아 올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회 밖에서 피해자와 함께 탈시설과 자립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기록될 것이다. 시설장이 구속된 이 사건 앞에서도 피해자 대신 시설협회를 불러 면죄부를 씌운 정치, 탈시설의 권리를 법으로 쓰는 일을 가로막은 정치, 피해자를 국회 밖에 세워둔 정치—그 맨 앞줄에 김미애 의원의 이름이 남을 것이다.
김미애 의원이 시설세력의 방패를 자처했다면, 우리는 피해자의 방패가 될 것이다. 김미애 의원이 참사 앞에서 법을 미뤘다면, 우리는 참사 앞에서 법을 당길 것이다. 우리는 국회 밖에서 피해자의 편에 서서, 탈시설을 명문화한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시설수용생존자들은 국회 밖에서 법을 요구하며 싸우고, 시설세력은 국회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체면을 차리는 이 역전을 법 제정으로 반드시 끝장낼 것이다.
2026년 2월 23일
인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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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김미애 의원은, 이 중대한 인권참사 앞에서 홀로 역행하고 있다. 김미애 의원이 국회에 제일 먼저 불렀어야 했던 건 피해자다.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 기록하고 지원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그것이 국회의 첫 번째 의무였다. 그러나 김미애 의원이 국회 안으로 먼저 불러들인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시설협회였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국회로 들어올 문을 닫아 걸고, 시설세력이 국회 마이크를 잡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색동원에서 벌어진 일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권력의 비대칭과 통제, 침묵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짓밟는지 드러난 인권참사로 그간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참사는 수십년에 걸쳐 수도 없이 반복되어왔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알아야 한다. 문제는 “나쁜 개인”이 아니라 시설이라는 구조다. 시설은 범죄를 숨기고,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책임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수없이 인권참사를 반복해왔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구조를 끊어내는 법이다.
그렇기에 지금 김미애 의원이 시설협회와 국회 안에서 벌이는 것은 토론회가 아니다. 시설협회를 국회로 초대해 “시설도 억울하다”는 말이 떠돌게 만들고, 책임을 흐리고, 입법과 제도개선을 늦추는 면피의 장이다. 어떻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라는 의원이 참사의 현장 앞에서 시설을 옹호하는 세력을 국회로 불러 면죄부를 쥐어준단 말인가. 국회 안에서는 시설세력이 말하고, 국회 밖에서는 피해자가 남겨지는 장면을, 국회의원이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피해자의 목소리가 국회로 들어올 자리를 시설세력이 점거하는 순간, 국회는 대책기관이 아니라 시설권력의 면죄부 기관으로 전락한다.
이 참사 앞에서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탈시설이 명시된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는 것.
그뿐이다.
색동원 참사가 증명한 건 명백하다. “시설을 더 잘 관리하자”는 말로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 ‘관리’가 반복될수록 시설은 더 안전한 공간이 되는 게 아니라, 더 정교한 통제와 더 단단한 침묵의 구조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권리로서의 탈시설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탈시설을 국가의 의무로 못 박아, ‘특권’이나 ‘시범사업’이 아니라 권리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시설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주거·활동지원·소득·의료·지역사회 지원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실행 장치다.
이 두 법이 없으면, 피해자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긴급조치”라는 임시방편 속에서 떠돌고, 가해 구조는 “재발방지”라는 말 뒤에 숨어 다음 인권참사를 준비한다. 지금 국회가 방치하는 것은 법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존엄이다.
그러나 김미애 의원은 이 필수 입법을 외면한 채, 국회 안에서 시설세력의 손을 맞잡는다. 국회 안에서는 “그럼에도 시설이 필요하다”는 말이 안전하게 유통되고, 국회 밖에서는 피해자와 시설수용생존자들이 “그러므로 탈시설이 필요하다”는 말을 추위와 폭력, 무시를 견디며 외치고 있다. 국회 안에는 시설 세력이 국회의원의 비호를 받으며 당당히 마이크를 잡고 있고, 국회 밖에는 피해자가 다른 시설수용생존자들의 손을 맞잡고, ‘시설 밖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며 서 있다. 국회 안에는 인권참사를 만들어낸 시설 수용을 정당화하는 토론회가 진행되고, 국회 밖에는 인권참사를 막을 유일한 해법인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아직도’ 방치돼 있다. 이것이 김미애 의원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김미애 의원이 국회 안에서 시설세력과 함께 시설을 옹호하는 말을 쌓아 올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회 밖에서 피해자와 함께 탈시설과 자립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기록될 것이다. 시설장이 구속된 이 사건 앞에서도 피해자 대신 시설협회를 불러 면죄부를 씌운 정치, 탈시설의 권리를 법으로 쓰는 일을 가로막은 정치, 피해자를 국회 밖에 세워둔 정치—그 맨 앞줄에 김미애 의원의 이름이 남을 것이다.
김미애 의원이 시설세력의 방패를 자처했다면, 우리는 피해자의 방패가 될 것이다. 김미애 의원이 참사 앞에서 법을 미뤘다면, 우리는 참사 앞에서 법을 당길 것이다. 우리는 국회 밖에서 피해자의 편에 서서, 탈시설을 명문화한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시설수용생존자들은 국회 밖에서 법을 요구하며 싸우고, 시설세력은 국회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체면을 차리는 이 역전을 법 제정으로 반드시 끝장낼 것이다.
2026년 2월 23일
인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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