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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원이 필요했던 사람이 우리 집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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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2,707회 작성일 26-02-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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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김시내 칼럼니스트】 필자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살아왔다. 5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20년이다. 혼자 살았고, 혼자 결정했고, 혼자 책임졌다. 물론 제도 안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과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왔으니, 흔히 말하는 ‘맨몸 독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삶의 주어만큼은 분명히 ‘나’였다.

예전에는 일상의 대부분을 직접 수행할 수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서 여행을 다녔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지금은 다를까? 다르다! 그러나 반드시 나빠졌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지금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다. 다만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방식의 할 수 있음’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하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서 가지만, 나는 몸에 늘 전용 바퀴 달린 리클라이너를 지니고 다녀서 앉아서 간다. 의도치 않게 ‘교통약자석 미덕’을 실천하며 산다. 또 가끔은 착한 일도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가 보이면, 휠체어 앞 책상 위에 짐을 살짝 올려드린다. 그러면 할머니는 나보다 더 크게 기뻐하신다. 생각을 조금만 전환하면, 하지 못하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진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고, 이제는 ‘진짜 혼자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시점에, 몸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원래는 두 분의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5년 넘게 함께해 주셨던 선생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셨다. 이후 몇 달 동안 한 분의 선생님이 두 분 몫을 해주고 계신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계시던 선생님마저 그만두시면 어떡하지. 그때부터 불안은 조용히 일상에 스며들었다.

논문도 써야 하고, 학술지도 써야 하는데, 머릿속 계산은 계속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이번 달은 괜찮을까’, ‘다음 달은 매칭이 될까?’, ‘혹시 이대로 쭉?’ 중개기관은 선생님이 없다고만 반복해서 이야기 한다.

그동안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올라오셨고, 아빠는 일 때문에 1년에 한 번 정도 오셨다. 작년까지, 그러니까 77세가 될 때까지 아빠는 일을 하셨다. 그만하라고, 이제는 쉬시라고 그렇게 말해도 듣지 않더니, 어느 순간 스스로 내려놓으셨다. 아마 본인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나와 조금 비슷한 방식으로.

선생님이 없는 상황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엄마가 며칠 올라오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활동지원사 선생님을 당장 구하지 못하자, 엄마는 혼자 계신 아빠를 걱정하셨다. 그리고 그 결론의 연장선에서, 아빠까지 함께 올라오셨다. 밥을 혼자 해드실 줄도 모르는, 생활 능력으로 보면 나보다 더 ‘지원이 필요한’ 한 분을 추가로 데리고.ㅎㅎ


AI 생성 이미지 . ©김시내
그날 이후, 우리 집은 묘하게 복잡해졌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내 휠체어 바퀴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를 겪었고, 뼈가 두 동강 난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지원이 필요했던’ 아빠는 우리를 케어하고 계신다. 사실 아빠가 우리 집에 올라오기 전, 엄마가 가장 걱정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고향집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라면 하나도 혼자 끓이지 못했고, 김치도 아무 김치나 드시지 않았다. 신김치는 안 드신다. 입맛은 까다롭고, 혼자 완성할 수 있는 요리는 없다. 요리에 대한 선택과 준비, 책임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그런 아빠가 지금 우리 집에서 살림을 한다. 설거지, 청소, 빨래까지 한다. 정확히 말하면, 하시긴 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시키는 것만 하신다.ㅎㅎ “이거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한다. “다음엔 뭐 하면 될까?”는 없다. 눈앞의 접시는 설거지하지만, 싱크대 옆에 쌓인 컵은 ‘지시 대상’이 아니라서 그대로 남는다. 몸은 아빠가 움직이고 있지만, 생활의 조율과 책임은 여전히 다른 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지금 묘한 상태다. 나는 오랫동안 독립해 살아온 사람이고, 엄마는 사고 이후 잠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며, 아빠는 가장 많은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많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이 상황이 웃긴 이유는 누군가가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다. 각자가 평생 살아온 역할과 생활 방식이, 준비되지 않은 채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이 이동되는 순간 드러나는 구조적 어긋남에 가깝다.

이쯤 되면 우리 집의 풍경은 더 이상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상태, 흔히 말하는 ‘노노케어’다. 다만 우리 집의 노노케어는 조금 변형되어 있다. 두 명은 노인이고, 한 명은 장애인이다. 그리고 이 ‘한 명’의 신체 나이는 엄마와 같다. 연령은 다르지만, 몸이 요구하는 돌봄의 조건은 거의 같은 수준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집의 돌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돌보는 구조가 아니라, 취약한 조건들이 서로를 떠받치며 임시로 배치된 상태에 가깝다. 오늘은 아빠가 나와 엄마의 일상을 책임지고, 내일은 엄마가 생활의 선택과 흐름을 정리하며, 그 사이에서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이 구조는 언제든 역할이 뒤집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래서 이 돌봄은 안정적인 체계라기보다, 사람이 빠지지 않기를 전제로 간신히 유지되는 임시 장치에 가깝다. 한 명의 몸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혹은 한 사람의 지원이 빠지는 순간, 전체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개인의 노력이나 가족의 헌신을 넘어, 취약성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은 돌봄 구조 자체로 이동한다.

자립을 증명해 온 20년의 시간과, 돌봄이 다시 호출되는 현재가 한 공간에 겹쳐졌다. 나는 분명 독립해 살아왔지만, 동시에 언제든 다시 보호의 대상으로 호명될 수 있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상태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개인의 감정이나 가족 내부의 문제를 넘어선다. 자립이란 과연 개인의 능력으로 완성되는 상태인지, 아니면 특정한 조건과 인력이 유지될 때만 가능한 임시적 상태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지금의 불안은 나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사람 하나가 빠지는 순간 삶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에 가깝다. 나는 과연 혼자 살아온 사람일까? 아니면 혼자 살 수 있게 허락받아 온 사람일까? 요즘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거창한 이론이나 통계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집안의 풍경 속에서 조금씩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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