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된 장애와 살아지는 장애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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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2,222회 작성일 26-02-19 15:41본문
제도적 장애개념과 당사자 삶에서 형성되는 장애의식 사이 긴장과 불일치
장애 의식이 고정된 장애 개념을 흔들며 권리와 사회 구조의 재구성 요구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양희 입력 2026.02.16 14:38 수정 2026.02.19 07:52
장애의 개념은 대체로 제도와 행정의 언어로 정리된다.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등록제도, 각종 통계와 정책 설계는 객관성과 기준의 명확함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는 측정 가능한 손상이나 기능 제한으로 환원되기 쉽다. 이러한 접근은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장애를 고정된 상태로 규정하고 개인의 삶을 단순화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개념은 편의와 효율을 위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 밖의 경험들은 종종 보이지 않게 된다.
반면 장애의식은 삶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으며, 자신이 문제라기보다 환경과 구조가 문제임을 체감한다. 계단 앞에서, 자막 없는 영상 앞에서,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앞에서 장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 실패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장애의식은 권리 요구와 연결되고,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주장하게 한다. 이는 개념으로 정리된 장애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정치적이다.
문제는 제도적 장애 개념이 이러한 장애의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등록 기준에 미치지 못해 ‘비장애인’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명백한 차별과 제약을 겪는 사람들, 성별·연령·빈곤과 결합된 복합적 장애 경험을 가진 이들은 제도의 언어에서 쉽게 누락된다. 이때 장애의식은 “나는 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표출되며, 제도는 불만과 갈등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특히 장애의식은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다는 점에서 고정된 개념과 충돌한다. 개인은 사고나 질병, 노화, 사회적 관계의 변화 속에서 장애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였던 상황이, 반복되는 배제 경험을 통해 구조적 문제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제도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 간극에서 “장애를 너무 넓게 정의한다”거나 “장애 정체성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같은 충돌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장애의식이 기존의 장애 개념을 흔들 때, 사회는 비로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누가 정상인가, 누구를 기준으로 사회가 설계되어 있는가, 보호와 지원은 누구의 관점에서 정의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장애를 특수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와 접근성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실제로 이동권, 정보 접근권, 탈시설과 같은 의제들은 장애의식이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며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다.
결국 장애의 개념과 장애의식은 충돌하는 관계라기보다 긴장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관계에 가깝다. 개념이 없으면 권리는 제도화될 수 없고, 의식이 없으면 개념은 공허해진다. 문제는 어느 한쪽을 절대화하는 데 있다. 장애를 오직 행정적 기준으로만 이해할 때, 삶의 복잡성은 삭제된다. 반대로 모든 경험을 개별적 의식으로만 설명할 때,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책임은 흐려질 수 있다.
장애를 둘러싼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의식을 끊임없이 제도와 개념에 질문하게 하고, 제도는 그 질문을 반영해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 장애는 정의로 완결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몸과 삶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묻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충돌은 갈등이 아니라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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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김양희 ena70@hanmail.net
장애 의식이 고정된 장애 개념을 흔들며 권리와 사회 구조의 재구성 요구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양희 입력 2026.02.16 14:38 수정 2026.02.19 07:52
장애의 개념은 대체로 제도와 행정의 언어로 정리된다.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등록제도, 각종 통계와 정책 설계는 객관성과 기준의 명확함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는 측정 가능한 손상이나 기능 제한으로 환원되기 쉽다. 이러한 접근은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장애를 고정된 상태로 규정하고 개인의 삶을 단순화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개념은 편의와 효율을 위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 밖의 경험들은 종종 보이지 않게 된다.
반면 장애의식은 삶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으며, 자신이 문제라기보다 환경과 구조가 문제임을 체감한다. 계단 앞에서, 자막 없는 영상 앞에서,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앞에서 장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 실패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장애의식은 권리 요구와 연결되고,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주장하게 한다. 이는 개념으로 정리된 장애보다 훨씬 유동적이고 정치적이다.
문제는 제도적 장애 개념이 이러한 장애의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등록 기준에 미치지 못해 ‘비장애인’으로 분류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명백한 차별과 제약을 겪는 사람들, 성별·연령·빈곤과 결합된 복합적 장애 경험을 가진 이들은 제도의 언어에서 쉽게 누락된다. 이때 장애의식은 “나는 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표출되며, 제도는 불만과 갈등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특히 장애의식은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다는 점에서 고정된 개념과 충돌한다. 개인은 사고나 질병, 노화, 사회적 관계의 변화 속에서 장애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였던 상황이, 반복되는 배제 경험을 통해 구조적 문제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제도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 간극에서 “장애를 너무 넓게 정의한다”거나 “장애 정체성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같은 충돌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장애의식이 기존의 장애 개념을 흔들 때, 사회는 비로소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누가 정상인가, 누구를 기준으로 사회가 설계되어 있는가, 보호와 지원은 누구의 관점에서 정의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장애를 특수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와 접근성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실제로 이동권, 정보 접근권, 탈시설과 같은 의제들은 장애의식이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며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다.
결국 장애의 개념과 장애의식은 충돌하는 관계라기보다 긴장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관계에 가깝다. 개념이 없으면 권리는 제도화될 수 없고, 의식이 없으면 개념은 공허해진다. 문제는 어느 한쪽을 절대화하는 데 있다. 장애를 오직 행정적 기준으로만 이해할 때, 삶의 복잡성은 삭제된다. 반대로 모든 경험을 개별적 의식으로만 설명할 때,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책임은 흐려질 수 있다.
장애를 둘러싼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의식을 끊임없이 제도와 개념에 질문하게 하고, 제도는 그 질문을 반영해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 장애는 정의로 완결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몸과 삶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묻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충돌은 갈등이 아니라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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