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예술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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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12,992회 작성일 24-03-12 15:43본문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정확하게 보면 명작이 나온다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율도 입력 2024.03.12 15:15
작은 사고에도 골절되어 발육이 정지되는 것은 부모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농축이골증(pyknodysostosis)이라는 유전병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152cm로 키가 멈추었다.
로트렉은 주로 매춘부들과 어울리고 육체관계를 맺었다. 아무래도 일반 여성들은, 키가 작은 로트렉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혹은 로트렉이 자격지심을 가지고 여자에게 접근하지 못했거나 않았던 것 아닐까도 생각된다.
로트렉, 소파 The sofa (1894~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 소파 The sofa (1894~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이 그린 그림을 보면 잠재의식 속에 여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로트렉, 화장하는 여자(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 화장하는 여자(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화장하는 여자>는 뒤돌아서 등을 보이고 있다.
그림 속의 여자는, 화가가 싫어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로트렉이 싫어서 돌아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수많은 장면 중에서 로트렉이 포착하여 그린 그림은 로트렉의, 여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내면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는 육체적인 장애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위축된 삶을 살았다. 정면이 아닌, 등을 보이는 자세의 모델을 통하여 여자에 대한 강박증적 심리가 나타난다.
로트렉, 쉬고있는 여자(1889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 쉬고있는 여자(1889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쉬고 있는 여자>도 역시 뒷모습을 그리고 있다.
로트렉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뒤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고 뒤에 앉았다. 원래 밝은 성격의 로트렉도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의 외모를 보면 거부할 것 같아 스스로 방어막을 친 것이다.
그러나 술집에서는 장애에 대해 편견이 없었다. 키 작은 것도 그냥 하나의 개성적인 특징으로 보았다. 귀족사회에서 보여준 위선과 권위가 없이 술집에서는 순수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로트렉은 이점이 좋아 몽마르트에 있는 ‘물랭루즈’(빨간 풍차) 라는 카바레에 자주 드나들며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그림을 그렸다.
로트렉은 말했다.
“나는 물랭루즈에서 내 키와 비슷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로트렉은 비유법을 썼는데 여기서 키는 신체적 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같은 상처받고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이지만 솔직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로트렉은 댄서, 매춘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렇게 밑바닥을 사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느낀 이유는, 로트렉은 귀족이었지만 자신을 버리다시피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반감과 배신감 때문이다.
당시의 카바레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물론 술도 팔고 이성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시낭송과 샹송, 정치 토론, 연극이나 만담을 공연하기도 했다.
로트렉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로 그는 날마다 카바레에 가서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많은 사람들을 그렸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는 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 않는 곳에 의외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여기에 감동받는다.”
이런 인생의 통찰을 갖고 있었기에 로트렉은 장애 때문에 춤을 직접 추지는 못해도 관찰자의 입장에서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로트렉은 원래 참여하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신체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찰자가 된 것이다. 그의 고독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분야이다.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창작하면 명작이 나오는 것이다.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은 자화상을 그리는데 있어서 특이한 것이 있었다. 정식 작품으로는 많이 그리지 않고 데생으로 간단히 그린 자화상이 많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콤플렉스로 느끼는 자신의 외모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그리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간단한 데생은 만화처럼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웃음의 대상으로 삼아 콤플렉스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지혜롭게 극복해 나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은 그림보다는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것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인정하면서 스스로 그림 그리는 고통 대신 객관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다.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 (율도국)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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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율도 uldokim@hanmail.net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율도 입력 2024.03.12 15:15
작은 사고에도 골절되어 발육이 정지되는 것은 부모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농축이골증(pyknodysostosis)이라는 유전병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152cm로 키가 멈추었다.
로트렉은 주로 매춘부들과 어울리고 육체관계를 맺었다. 아무래도 일반 여성들은, 키가 작은 로트렉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혹은 로트렉이 자격지심을 가지고 여자에게 접근하지 못했거나 않았던 것 아닐까도 생각된다.
로트렉, 소파 The sofa (1894~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 소파 The sofa (1894~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이 그린 그림을 보면 잠재의식 속에 여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로트렉, 화장하는 여자(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 화장하는 여자(1896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화장하는 여자>는 뒤돌아서 등을 보이고 있다.
그림 속의 여자는, 화가가 싫어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로트렉이 싫어서 돌아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수많은 장면 중에서 로트렉이 포착하여 그린 그림은 로트렉의, 여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내면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는 육체적인 장애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위축된 삶을 살았다. 정면이 아닌, 등을 보이는 자세의 모델을 통하여 여자에 대한 강박증적 심리가 나타난다.
로트렉, 쉬고있는 여자(1889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 쉬고있는 여자(1889년).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쉬고 있는 여자>도 역시 뒷모습을 그리고 있다.
로트렉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뒤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고 뒤에 앉았다. 원래 밝은 성격의 로트렉도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의 외모를 보면 거부할 것 같아 스스로 방어막을 친 것이다.
그러나 술집에서는 장애에 대해 편견이 없었다. 키 작은 것도 그냥 하나의 개성적인 특징으로 보았다. 귀족사회에서 보여준 위선과 권위가 없이 술집에서는 순수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로트렉은 이점이 좋아 몽마르트에 있는 ‘물랭루즈’(빨간 풍차) 라는 카바레에 자주 드나들며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그림을 그렸다.
로트렉은 말했다.
“나는 물랭루즈에서 내 키와 비슷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로트렉은 비유법을 썼는데 여기서 키는 신체적 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같은 상처받고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이지만 솔직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로트렉은 댄서, 매춘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렇게 밑바닥을 사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느낀 이유는, 로트렉은 귀족이었지만 자신을 버리다시피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반감과 배신감 때문이다.
당시의 카바레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물론 술도 팔고 이성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시낭송과 샹송, 정치 토론, 연극이나 만담을 공연하기도 했다.
로트렉의 지정석이 있을 정도로 그는 날마다 카바레에 가서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많은 사람들을 그렸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는 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 않는 곳에 의외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여기에 감동받는다.”
이런 인생의 통찰을 갖고 있었기에 로트렉은 장애 때문에 춤을 직접 추지는 못해도 관찰자의 입장에서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로트렉은 원래 참여하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신체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찰자가 된 것이다. 그의 고독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분야이다.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창작하면 명작이 나오는 것이다.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율도국) 참고
로트렉은 자화상을 그리는데 있어서 특이한 것이 있었다. 정식 작품으로는 많이 그리지 않고 데생으로 간단히 그린 자화상이 많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콤플렉스로 느끼는 자신의 외모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그리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간단한 데생은 만화처럼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웃음의 대상으로 삼아 콤플렉스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지혜롭게 극복해 나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은 그림보다는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것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인정하면서 스스로 그림 그리는 고통 대신 객관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이다.
<명화와 대화하는 색채 심리학> (율도국)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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