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장애시민 불복종’에서 엿보는 비장애 중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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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13,008회 작성일 24-01-29 11:00본문
장애인 의견 대신 표현, 평가·비난의 언어 등에서 비장애 사회 느껴
기자명칼럼니스트 이원무 입력 2024.01.26 17:38 수정 2024.01.26 17:39
오이도역 참사, 장애인시설 내 인권침해, 장애학생 진주교대 입시성적 조작 등 장애인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을 소식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이를 타개하고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오늘도 거리에 나와 활동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권리를 침해하는 정부에 불복종하고 있다.
마침 ‘장애시민 불복종’이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SNS와 장애계 언론을 통해 접한 적 있어 그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거 말고도 다른 책들이 내 눈에 들어오고, 나의 경제적 형편 등을 고려하다 보니 그 책 구입을 조금은 미루게 됐다.
그러다 ‘장애인 혐오 진단과 대응’이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한 장애인단체 공동대표가 책 ‘장애시민 불복종’의 내용 중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권리를 정의하는 법률 조항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정되지 않는 권리는 법제화되기 전까지 언제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내용을 인용했던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폐성 장애인도 아직까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자폐인 권리를 정의하는 법률도 없기에 그 내용에서 많은 공감이 갔었다.
게다가 마침 형편도 돼서 ‘장애시민 불복종’이란 책을 사야겠다는 결심이 서서 결국 사게 됐다. 책 저자 변재원은 책의 초반부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진학, 구글코리아 인턴십 경력 등 일등시민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장애를 극복 대상으로 여겼다가, 장애운동을 만나면서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6페이지)고 심정을 고백한다.
그 책을 읽다가 잠깐 멈췄지만, 이번 주에 다시 읽게 되어 드디어 다 읽었다. 장애계에 있었던 일들이 그 책에 많이 나오다 보니, 나로선 책이 술술 읽혀지게 됐다.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특히 ‘직접 물어보시겠어요?’, ‘평가의 언어, 비난의 언어’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잠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직접 불어보시겠어요?’ 부분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 내 생각은 내가 말하고 책임 또한 내가 진다는 것이 간단명료하면서도 중요한 신념이지만 이게 장애운동에서는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라며, 중증장애인 옆의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의견을 대신 표현하게끔 하는 상황이 시도때도없이 발생한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179~180페이지)고 책의 저자는 장애운동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그런 상황이 생긴 이유로 선입견에서 비롯됐다든지, 장애인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꺼려지기 때문(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180페이지) 등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현장 취재차 방문한 기자도, 행사 개요 파악을 위해 온 정보과 형사도 장애인과의 소통을 최후 수단으로 여기고 눈앞의 주최자를 두고도 당장 말 건네기 쉬운 비장애인 관계자만을 찾아 헤멘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180~181페이지)고 저자는 관련 상황을 기술한다.
이 내용들을 보며 기자나 정보과 형사들의 행동에서 이런 게 느껴진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의사방식대로 능수능란하게 음성언어로 표현하고 일관되게 말하면 우리가 장애인과 직접 대화할 거란 식의 태도 말이다. 그런데 시위에 참여하는 지적·뇌병변 장애인 등의 경우 일상생활 동작, 언어능력, 인지능력 등에 상당한 제한 있다고 법적으로, 의학적으로 이들을 정의한다.
그렇다면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말에는 일관성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들이 자유롭게 말하며 요구사항을 언론 등에 말할 수 있도록, 재촉하기보단 오히려 기다리면서, 이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설령 일관성이 없어도 경청하는 자세가 언론 등에 필요하단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비장애인과 얘기하고자 하는 기자나 형사들의 행동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 적응하라고 강요하는 식의 장애인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활동가들이 기자나 형사 등 제3 자에게 ‘직접 물어보시겠어요?’란 건 시위에 참여하는 장애인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의미인 건 당연하다. 제3 자들은 이를 서운하게 생각해선 안 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필자의 경우엔, 3년 전 금융상품 가입 시 상품의 성격과 관련 질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해 그거에 관해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대답을 들었는데, 잘 이해하지 못해 어떨 땐 하던 말 또 반복하고 해서 옆에 있던 누나와 엄마가 그냥 이해하지 못하면 넘어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누나와 엄마가 대신 대답하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편으론 내가 피해 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이해되지만, 당시엔 금융상품에 대해 필히 알아야 할 걸 모른다면 내 권익이 침해당할 수 있고 나 대신 대답하려고 한 누나, 엄마의 행위가 나의 자기결정권과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들에게 항변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 나의 알 권리를 지키며 알아야 할 걸 최대한 이해한 뒤 금융상품에 가입했지만 말이다.
말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사실 말 반복하지 않고 한 번에 알아듣던지, 이해하지 못하면 눈치껏 대충 때려 맞추던지 그냥 넘어가라는 식으로 가족이나 주위에서 상당한 압력을 주는 게 나로선 큰 압력으로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 적응하라고 하는 압력이 나로선 좀 힘들다.
지적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들이 법정 진술 시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신빙성이 떨어진단 이유로 판결 시 이들의 인권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법적, 의학적으로 능력에 제한이 있는 게 이들 특성으로 정의되니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한 건 당연하다. 결국, 판결을 통해 사법부는 비장애인처럼 진술을 일관되게 하라고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편안하게 분위기 조성하면서 이들이 진술하도록 지원하는 등의 합리적 변경 없이 말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장애인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고 왜곡되는 게 너무도 당연하며, 설령 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해도 형식적인 참여에 머물고 말 거다. 그러기에 새삼스럽지만, 장애 특성 등 다양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배우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지자체 차원의 중장기적 계획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다시금 느낀다.
‘평가의 언어, 비난의 언어‘ 부분에서는 생산 능력과 업무 속도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비장애 중심적 사고의 결과일 뿐이라며, 장애 운동은 장애인에게 현대사회가 강요하는 생산성과 효율성에 저항하여 개개인의 속도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과도 같았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277~278페이지)고 저자는 언급한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사무국장이었던 박옥순 활동가는 평가, 비난, 명령의 말이 생산성의 언어가 아닌 불행의 동의어라고 보며, 그런 칼날과도 같은 활동가들의 말을 마주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말 끊고 심지어는 회의를 중단하기까지 했단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모두 자신의 날카로운 말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나서야 회의를 재개할 수 있었단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278~279페이지).
나는 학창시절 때 괴롭힘을 많이 당했기에 나 자신이 멸시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상대방이 찍소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소리를 가족들에게 들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대입을 치러 4년제 대학에 합격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 대학원 졸업 후 영어번역을 공부하면서 번역사 자격증을 땄고 번역 프리랜서로 잠시 일했고,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해 공부하고 졸업한 후엔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후 장애인단체에서 4년 정도를 일했다.
하지만 영한/한영번역이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가족에게 듣고 나면, 그렇다고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존감이 내려갔었다. 장애계단체에서 정책 간사로 활동했을 때 상사로부터 내가 누구처럼 아이디어가 없어 창피하다는 말을 듣거나 논리가 없으니 논리를 만들어 설득하란 식의 평가를 들으면 내가 무능한 것 같아 자존감은 확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무능하다고 하는 평가가 더욱 두려워져 모르면 물어보면서도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할 때까지 말을 반복하거나 질문을 두 번 이상 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 식으로 능력을 쌓고. 이를 이용해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거나 평가했던 사람들의 말이라면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함부로 평가·비난하거나 명령 조로 말하려는 마음이 강했었다.
장애계 단체에서 인지능력에 제한이 있는 당사자들과 만나면서는 나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가끔은 이들을 속에서 얕잡아보는 식의 나쁜 마음이 마음속에 있었다. 자조모임 등에서도 내 논리가 공격당하는 거 같으면 내가 맞음을 입증하려고, 상대방을 평가하고 공격하는 식의 마음이 강했고 실제로 그게 언행으로도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니 비장애 중심 능력주의를 통한 차별에서 이런 것들이 나왔구나 하는 걸 느끼며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대 등을 거쳐오면서 국민들은 폭압적이거나 명령조의 말을 많이 듣고, 정치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국민들이 많았을 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느낌을 솔직담백하게 얘기하기보단 평가·비난·명령의 말이 국민들 입에서 많이 나왔을 거다. 나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비장애 중심의 능력주의와 독재 시대의 잔재로 인한 평가, 비난, 명령의 말들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런 말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고, 말을 조심해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사실은 지켜지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노력하다 보면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나 자신이 가까이 가려나?
이외에도 코로나 시국 때 비장애인들은 거리 두기를 했지만, 정신병동이나 시설에선 코호트 정책으로 그곳에 있는 장애인들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이게 시설 내 집단감염이 창궐하게 된 원인이 됐던 걸 기억할 거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국가가 시설 밖 사람들의 자유와 안위만을 염두에 두었다(책 '장애시민 불복종' 57페이지)고 말한다. 국가의 폭력성과 장애인 차별을 엿볼 수 있고, 새삼스럽지만 비장애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는 하나의 예라고 본다.
이렇게 저자는 자신의 눈으로 비장애 중심의 사회를 보여주며, 장애인 차별은 물론 그 사회로 인해 사람들에게 끼친 해악을 설명했다. 이외에도 저자는 장애 운동이란 세계와 만나며 활동가 등을 통해 그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운동에 뛰어든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손길들, 운동 세계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두려움과 무지 등에 대해 자신의 느낌으로 솔직담백하게 전했다. 그의 책을 한두 번 더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비장애 중심의 사회가 상당히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것임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 장애나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으로 가는 작은 실마리가 마련되길 말이다. 그러면 모든 이들의 기본권과 자유 보장이 꿈이 아닌 현실로 가는 길이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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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원무 wmlee73@naver.com
기자명칼럼니스트 이원무 입력 2024.01.26 17:38 수정 2024.01.26 17:39
오이도역 참사, 장애인시설 내 인권침해, 장애학생 진주교대 입시성적 조작 등 장애인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을 소식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이를 타개하고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장애인들은 오늘도 거리에 나와 활동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권리를 침해하는 정부에 불복종하고 있다.
마침 ‘장애시민 불복종’이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SNS와 장애계 언론을 통해 접한 적 있어 그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거 말고도 다른 책들이 내 눈에 들어오고, 나의 경제적 형편 등을 고려하다 보니 그 책 구입을 조금은 미루게 됐다.
그러다 ‘장애인 혐오 진단과 대응’이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한 장애인단체 공동대표가 책 ‘장애시민 불복종’의 내용 중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권리를 정의하는 법률 조항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정되지 않는 권리는 법제화되기 전까지 언제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내용을 인용했던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자폐성 장애인도 아직까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자폐인 권리를 정의하는 법률도 없기에 그 내용에서 많은 공감이 갔었다.
게다가 마침 형편도 돼서 ‘장애시민 불복종’이란 책을 사야겠다는 결심이 서서 결국 사게 됐다. 책 저자 변재원은 책의 초반부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진학, 구글코리아 인턴십 경력 등 일등시민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장애를 극복 대상으로 여겼다가, 장애운동을 만나면서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6페이지)고 심정을 고백한다.
그 책을 읽다가 잠깐 멈췄지만, 이번 주에 다시 읽게 되어 드디어 다 읽었다. 장애계에 있었던 일들이 그 책에 많이 나오다 보니, 나로선 책이 술술 읽혀지게 됐다.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특히 ‘직접 물어보시겠어요?’, ‘평가의 언어, 비난의 언어’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잠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직접 불어보시겠어요?’ 부분에서 이런 내용이 있다. 내 생각은 내가 말하고 책임 또한 내가 진다는 것이 간단명료하면서도 중요한 신념이지만 이게 장애운동에서는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라며, 중증장애인 옆의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의 의견을 대신 표현하게끔 하는 상황이 시도때도없이 발생한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179~180페이지)고 책의 저자는 장애운동에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그런 상황이 생긴 이유로 선입견에서 비롯됐다든지, 장애인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꺼려지기 때문(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180페이지) 등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현장 취재차 방문한 기자도, 행사 개요 파악을 위해 온 정보과 형사도 장애인과의 소통을 최후 수단으로 여기고 눈앞의 주최자를 두고도 당장 말 건네기 쉬운 비장애인 관계자만을 찾아 헤멘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180~181페이지)고 저자는 관련 상황을 기술한다.
이 내용들을 보며 기자나 정보과 형사들의 행동에서 이런 게 느껴진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의사방식대로 능수능란하게 음성언어로 표현하고 일관되게 말하면 우리가 장애인과 직접 대화할 거란 식의 태도 말이다. 그런데 시위에 참여하는 지적·뇌병변 장애인 등의 경우 일상생활 동작, 언어능력, 인지능력 등에 상당한 제한 있다고 법적으로, 의학적으로 이들을 정의한다.
그렇다면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말에는 일관성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들이 자유롭게 말하며 요구사항을 언론 등에 말할 수 있도록, 재촉하기보단 오히려 기다리면서, 이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설령 일관성이 없어도 경청하는 자세가 언론 등에 필요하단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비장애인과 얘기하고자 하는 기자나 형사들의 행동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 적응하라고 강요하는 식의 장애인 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활동가들이 기자나 형사 등 제3 자에게 ‘직접 물어보시겠어요?’란 건 시위에 참여하는 장애인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의미인 건 당연하다. 제3 자들은 이를 서운하게 생각해선 안 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필자의 경우엔, 3년 전 금융상품 가입 시 상품의 성격과 관련 질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해 그거에 관해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대답을 들었는데, 잘 이해하지 못해 어떨 땐 하던 말 또 반복하고 해서 옆에 있던 누나와 엄마가 그냥 이해하지 못하면 넘어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누나와 엄마가 대신 대답하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편으론 내가 피해 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이해되지만, 당시엔 금융상품에 대해 필히 알아야 할 걸 모른다면 내 권익이 침해당할 수 있고 나 대신 대답하려고 한 누나, 엄마의 행위가 나의 자기결정권과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들에게 항변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 나의 알 권리를 지키며 알아야 할 걸 최대한 이해한 뒤 금융상품에 가입했지만 말이다.
말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사실 말 반복하지 않고 한 번에 알아듣던지, 이해하지 못하면 눈치껏 대충 때려 맞추던지 그냥 넘어가라는 식으로 가족이나 주위에서 상당한 압력을 주는 게 나로선 큰 압력으로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 적응하라고 하는 압력이 나로선 좀 힘들다.
지적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들이 법정 진술 시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신빙성이 떨어진단 이유로 판결 시 이들의 인권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법적, 의학적으로 능력에 제한이 있는 게 이들 특성으로 정의되니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한 건 당연하다. 결국, 판결을 통해 사법부는 비장애인처럼 진술을 일관되게 하라고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편안하게 분위기 조성하면서 이들이 진술하도록 지원하는 등의 합리적 변경 없이 말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장애인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고 왜곡되는 게 너무도 당연하며, 설령 장애인들이 사회에 참여해도 형식적인 참여에 머물고 말 거다. 그러기에 새삼스럽지만, 장애 특성 등 다양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배우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 지자체 차원의 중장기적 계획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다시금 느낀다.
‘평가의 언어, 비난의 언어‘ 부분에서는 생산 능력과 업무 속도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비장애 중심적 사고의 결과일 뿐이라며, 장애 운동은 장애인에게 현대사회가 강요하는 생산성과 효율성에 저항하여 개개인의 속도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과도 같았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277~278페이지)고 저자는 언급한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사무국장이었던 박옥순 활동가는 평가, 비난, 명령의 말이 생산성의 언어가 아닌 불행의 동의어라고 보며, 그런 칼날과도 같은 활동가들의 말을 마주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말 끊고 심지어는 회의를 중단하기까지 했단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모두 자신의 날카로운 말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나서야 회의를 재개할 수 있었단다(출처: 책 ‘장애시민 불복종' 278~279페이지).
나는 학창시절 때 괴롭힘을 많이 당했기에 나 자신이 멸시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상대방이 찍소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소리를 가족들에게 들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대입을 치러 4년제 대학에 합격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 대학원 졸업 후 영어번역을 공부하면서 번역사 자격증을 땄고 번역 프리랜서로 잠시 일했고,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해 공부하고 졸업한 후엔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후 장애인단체에서 4년 정도를 일했다.
하지만 영한/한영번역이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가족에게 듣고 나면, 그렇다고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존감이 내려갔었다. 장애계단체에서 정책 간사로 활동했을 때 상사로부터 내가 누구처럼 아이디어가 없어 창피하다는 말을 듣거나 논리가 없으니 논리를 만들어 설득하란 식의 평가를 들으면 내가 무능한 것 같아 자존감은 확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무능하다고 하는 평가가 더욱 두려워져 모르면 물어보면서도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할 때까지 말을 반복하거나 질문을 두 번 이상 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 식으로 능력을 쌓고. 이를 이용해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거나 평가했던 사람들의 말이라면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함부로 평가·비난하거나 명령 조로 말하려는 마음이 강했었다.
장애계 단체에서 인지능력에 제한이 있는 당사자들과 만나면서는 나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가끔은 이들을 속에서 얕잡아보는 식의 나쁜 마음이 마음속에 있었다. 자조모임 등에서도 내 논리가 공격당하는 거 같으면 내가 맞음을 입증하려고, 상대방을 평가하고 공격하는 식의 마음이 강했고 실제로 그게 언행으로도 나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니 비장애 중심 능력주의를 통한 차별에서 이런 것들이 나왔구나 하는 걸 느끼며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대 등을 거쳐오면서 국민들은 폭압적이거나 명령조의 말을 많이 듣고, 정치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국민들이 많았을 거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느낌을 솔직담백하게 얘기하기보단 평가·비난·명령의 말이 국민들 입에서 많이 나왔을 거다. 나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비장애 중심의 능력주의와 독재 시대의 잔재로 인한 평가, 비난, 명령의 말들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런 말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고, 말을 조심해야 함을 다시금 느낀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사실은 지켜지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노력하다 보면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나 자신이 가까이 가려나?
이외에도 코로나 시국 때 비장애인들은 거리 두기를 했지만, 정신병동이나 시설에선 코호트 정책으로 그곳에 있는 장애인들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이게 시설 내 집단감염이 창궐하게 된 원인이 됐던 걸 기억할 거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국가가 시설 밖 사람들의 자유와 안위만을 염두에 두었다(책 '장애시민 불복종' 57페이지)고 말한다. 국가의 폭력성과 장애인 차별을 엿볼 수 있고, 새삼스럽지만 비장애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는 하나의 예라고 본다.
이렇게 저자는 자신의 눈으로 비장애 중심의 사회를 보여주며, 장애인 차별은 물론 그 사회로 인해 사람들에게 끼친 해악을 설명했다. 이외에도 저자는 장애 운동이란 세계와 만나며 활동가 등을 통해 그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운동에 뛰어든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손길들, 운동 세계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두려움과 무지 등에 대해 자신의 느낌으로 솔직담백하게 전했다. 그의 책을 한두 번 더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비장애 중심의 사회가 상당히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것임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 장애나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으로 가는 작은 실마리가 마련되길 말이다. 그러면 모든 이들의 기본권과 자유 보장이 꿈이 아닌 현실로 가는 길이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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