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답게’, 정신적 미등록 당사자가 문을 연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햇빛촌 조회 13,094회 작성일 24-01-15 13:16본문
뜻을 시작하는 시간, 안주하지 않는 결심을 다지며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세이 입력 2024.01.12 17:35
나는 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큰일을 앞두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에 결과를 맡기고 기다린다)’과 함께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 뜻을 이룰 시간도 만난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담고 있다. 지금 여기, 현재가 어떤지를 알고, 나태하지 않은 자세로 발전적인 방향의 삶을 추구하자는 자세다.
어떻게 하면 나의 칼럼에서는 정신장애인으로서, 자폐 당사자로서, 미등록 당사자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참신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를 다소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칼럼방 제목을 ‘그럼에도 우리답게’로 정했던 지난달 초의 초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우리들다운’ 글이라고 할지언정 같은 장애 유형이라고 해도 전적인 공감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에 앞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해온 분들의 글에 집중하고 이입하며 때로는 한없이 공감하던 경험은 소중하기도 하다.
특히 정신적 당사자들은 ‘나같이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라는 경험을 처음 한순간을 눈물로 간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물질적으로 뭐가 달라졌냐는 ‘훈수’를 나는 안 좋아하는데, 당사자는 장애 특성으로 인한 차별만 받다가 ‘세상과의 마찰로 겪는 어려움이 내 존재가 잘못되어서 그런 걸까?’로 흐르게 되기 십상인 문제라서 그렇다.
어쩌면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 칼럼은 자신의 과거 서사를 꺼내고,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정체성을 형성하고 의료적 진단을 받은 인생사를 꺼내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필수의례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재작년 나의 장애 유형과 관련한 1회성 기고를 한 언론사에 그렇게 했었던 정신적 장애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니 과연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마음에 글을 쓰다 가볍게 웃음이 났다. 언뜻 첫 글부터 심각해질 수 있던 중 참으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2022년 여름의 그 외부 매체 기고는 오티즘 엑스포(Autism EXPO)라는 자리에서 단체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3Oceans)’를 대표하여 발표한 자리였다는 특성이 있고, 그걸 언론 기사의 틀에 최소한 맞추는 정도 외엔 거의 수정하지 않고 기사화된 것이다 보니 내가 더 말하고 싶은 정신(사회심리)장애나 당사자 권리에 대한 언급은 그 글 하나에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미등록 자폐 당사자의 가시화 관련으로 많은분들에게 읽히고 참고되고 사랑받은 글이 되었던 점을 매우 감사히 받아들인다.
나는 2024년 올해로 세는 나이 서른을 맞았다. 한 자릿수 나이의 어린아이였을 적에는 몸은 좀 늦게 크지만 천재라서 독특한 아이로, 10대 시절에는 자폐 특성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울리기 힘들었던 학생으로, 20대 시절에는 정신장애 특성(강박장애 및 양극성장애, 상세불명의 정신증, 사회공포증 등의 진단을 받아본 적이 있다)으로 인해 여러 차례 위태로웠던 사람으로 살아왔다. 앞으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딱딱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단연코 아닐 것이다. 내가 10대 시절에만 자폐 당사자였고 나머지 삶에는 비당사자였을 리도 없는데다, 10대 시절에도 정신적 건강 면에서 안전하지 못한 환경들에 놓여있었고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서로 같은 재단이다) 교내에서 실시한 ‘보여주기식’ 설문형 심리검사에서 우울, 불안 등 여러 심리적 위험요소들에 대해 나는 매우 높은 수치가 나온 결과를 받았다.
결과는 교무실에 불려와서 혼나고 아이들에게 소문만 날 뿐이었다. 고2쯤 되어선 ‘신뢰도 의심’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대한 긍정적인 응답만 하는 쪽으로 ‘생존법’을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이런 처지에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같은 건 더더욱 접할 수 없었음이 당연하다.
기회를 잡는다면 미등록 자폐 당사자면서 정신장애인으로, 또 여러 소수자성을 갖고 살아온 나의 20대에 대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가시화 차원에서 다뤄 볼 의향이 있다. ‘불행 서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장애인 서사를 지향하지만, 때로는 힘들 수도 있고, 급성기(정신장애)든 멜트다운(자폐성장애)이든 올 수도 있다.
늘 최선이지는 못할 걱정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당사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겠지만, 어렴풋한 감은 다들 가지고 있을 줄로 여기게 된다. 제3자가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려는 관심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삶의 이것저것에 지칠 대로 지치면 그것이 그나마 나를 알아주는 위로로 보여 먹먹해지기도 했었으니, 정체성을 형성하고 나서도 사람 마음이란 참 복잡하다.
나의 글들을 시작하면서,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정신적 장애 당사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삶에 때로는 ‘당신이 잘못된 존재인 게 아니다’라는 위안을, 때로는 더 나은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메시지를 줄 수 있어서 새로운 결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나도, 여러 독자님들도 서로 살아남아 줘서 삶에 수고하셨다는 그런 응원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감성을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및 발달장애 당사자에 대한 이해와 권익, 그리고 신경다양성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미등록 및 법외 정신적 장애인들의 배경과 더 나은 미래의 삶을 꼭 말하고, 정신적 장애 전반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글을 쓰는 당사자가 되려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김세이 ez2ac@naver.com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세이 입력 2024.01.12 17:35
나는 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큰일을 앞두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에 결과를 맡기고 기다린다)’과 함께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 뜻을 이룰 시간도 만난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담고 있다. 지금 여기, 현재가 어떤지를 알고, 나태하지 않은 자세로 발전적인 방향의 삶을 추구하자는 자세다.
어떻게 하면 나의 칼럼에서는 정신장애인으로서, 자폐 당사자로서, 미등록 당사자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참신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를 다소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칼럼방 제목을 ‘그럼에도 우리답게’로 정했던 지난달 초의 초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우리들다운’ 글이라고 할지언정 같은 장애 유형이라고 해도 전적인 공감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에 앞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해온 분들의 글에 집중하고 이입하며 때로는 한없이 공감하던 경험은 소중하기도 하다.
특히 정신적 당사자들은 ‘나같이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라는 경험을 처음 한순간을 눈물로 간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물질적으로 뭐가 달라졌냐는 ‘훈수’를 나는 안 좋아하는데, 당사자는 장애 특성으로 인한 차별만 받다가 ‘세상과의 마찰로 겪는 어려움이 내 존재가 잘못되어서 그런 걸까?’로 흐르게 되기 십상인 문제라서 그렇다.
어쩌면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 칼럼은 자신의 과거 서사를 꺼내고,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정체성을 형성하고 의료적 진단을 받은 인생사를 꺼내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필수의례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재작년 나의 장애 유형과 관련한 1회성 기고를 한 언론사에 그렇게 했었던 정신적 장애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니 과연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마음에 글을 쓰다 가볍게 웃음이 났다. 언뜻 첫 글부터 심각해질 수 있던 중 참으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2022년 여름의 그 외부 매체 기고는 오티즘 엑스포(Autism EXPO)라는 자리에서 단체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3Oceans)’를 대표하여 발표한 자리였다는 특성이 있고, 그걸 언론 기사의 틀에 최소한 맞추는 정도 외엔 거의 수정하지 않고 기사화된 것이다 보니 내가 더 말하고 싶은 정신(사회심리)장애나 당사자 권리에 대한 언급은 그 글 하나에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미등록 자폐 당사자의 가시화 관련으로 많은분들에게 읽히고 참고되고 사랑받은 글이 되었던 점을 매우 감사히 받아들인다.
나는 2024년 올해로 세는 나이 서른을 맞았다. 한 자릿수 나이의 어린아이였을 적에는 몸은 좀 늦게 크지만 천재라서 독특한 아이로, 10대 시절에는 자폐 특성으로 인해 학교에서 어울리기 힘들었던 학생으로, 20대 시절에는 정신장애 특성(강박장애 및 양극성장애, 상세불명의 정신증, 사회공포증 등의 진단을 받아본 적이 있다)으로 인해 여러 차례 위태로웠던 사람으로 살아왔다. 앞으로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딱딱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단연코 아닐 것이다. 내가 10대 시절에만 자폐 당사자였고 나머지 삶에는 비당사자였을 리도 없는데다, 10대 시절에도 정신적 건강 면에서 안전하지 못한 환경들에 놓여있었고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서로 같은 재단이다) 교내에서 실시한 ‘보여주기식’ 설문형 심리검사에서 우울, 불안 등 여러 심리적 위험요소들에 대해 나는 매우 높은 수치가 나온 결과를 받았다.
결과는 교무실에 불려와서 혼나고 아이들에게 소문만 날 뿐이었다. 고2쯤 되어선 ‘신뢰도 의심’ 결과가 나오더라도 최대한 긍정적인 응답만 하는 쪽으로 ‘생존법’을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이런 처지에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같은 건 더더욱 접할 수 없었음이 당연하다.
기회를 잡는다면 미등록 자폐 당사자면서 정신장애인으로, 또 여러 소수자성을 갖고 살아온 나의 20대에 대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가시화 차원에서 다뤄 볼 의향이 있다. ‘불행 서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장애인 서사를 지향하지만, 때로는 힘들 수도 있고, 급성기(정신장애)든 멜트다운(자폐성장애)이든 올 수도 있다.
늘 최선이지는 못할 걱정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당사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겠지만, 어렴풋한 감은 다들 가지고 있을 줄로 여기게 된다. 제3자가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려는 관심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삶의 이것저것에 지칠 대로 지치면 그것이 그나마 나를 알아주는 위로로 보여 먹먹해지기도 했었으니, 정체성을 형성하고 나서도 사람 마음이란 참 복잡하다.
나의 글들을 시작하면서,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정신적 장애 당사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삶에 때로는 ‘당신이 잘못된 존재인 게 아니다’라는 위안을, 때로는 더 나은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메시지를 줄 수 있어서 새로운 결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나도, 여러 독자님들도 서로 살아남아 줘서 삶에 수고하셨다는 그런 응원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감성을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및 발달장애 당사자에 대한 이해와 권익, 그리고 신경다양성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미등록 및 법외 정신적 장애인들의 배경과 더 나은 미래의 삶을 꼭 말하고, 정신적 장애 전반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글을 쓰는 당사자가 되려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김세이 ez2ac@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