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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믿은 죄, 대가 치르는 특수교육전공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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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2,876회 작성일 26-02-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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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특수교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내린 선택의 결과는, 지금 나락이 되고 있다. 그들의 오랜 준비와 소망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제 더 이상 완곡한 표현으로는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특수교육 재교육과정 자격 제한은 ‘정책 조정’이 아니다. 학생들의 삶을 담보로 행정을 관철하는 방식, 그 자체다. 국가는 지금 학생들의 삶을 대가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나는 이들의 선배이며,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겸임교수다. 처음 학생들을 만나면 늘 묻는다. 왜 이 과정을 선택했는지. 학생들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과정을 통해 교육 현장에서 특수교사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수교사 자격을 취득해 더 다양한 아이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더 잘 지원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졸업생들이 교육현장에서 특수교육 전공자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나는 강의실에서 이들과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지금의 상황을 ‘중립’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책임 회피라고 생각한다. 행정의 한 줄 해석이 강의실 안에 어떤 결과를 남기고 있는지,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방식이 얼마나 잔혹한지 이해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전 정부 시기부터 일부 특수교육 전공을 ‘재교육과정’으로 분류해 왔고, 그에 따른 교원자격 부여 범위에 대한 해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분류 그 자체가 아니다. 그 해석을 경과 규정 하나 없이, 이미 입학해 공부하던 재학생들에게 그대로 덮어씌운 방식이다. 이는 제도를 정비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끝내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규칙을 바꾼 행정이다.

학생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위험을 알리는 경고도 없었고, 되돌릴 시간도, 대안도 주어지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해석은 예전부터 있었다”는 말과 “이미 입학한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냉정한 통보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이 존재했다면, 왜 학생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입학했는가. 왜 등록금을 내고 시간을 쓰며 인생의 방향을 이 선택에 맞췄는가. 왜 지금 와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가.

이 학생들은 무모한 도박이나 외줄타기를 한 것이 아니다. 교육부가 승인한 제도, 국가가 허용한 교육과정, 공적으로 운영되어 온 교육대학원을 국가 시스템으로 믿고 선택했을 뿐이다. 그 믿음 위에서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냈고, 몇 년의 시간을 투자했으며, 현직 교사로서의 커리어와 삶의 계획을 이 선택에 맞춰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누군가는 아이를 재운 뒤 밤새 과제를 했고, 누군가는 생계를 책임지며 야간 수업을 버텼다. 그 모든 선택은 이미 실행됐고,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국가는 지금 말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개인의 책임이다.”

이 문장은 행정적으로는 간결할지 몰라도, 교육의 언어는 아니다. 국가가 만들어 놓은 제도를 신뢰한 대가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가장 참기 어려운 순간은, 내가 가르친 교육이 하루아침에 ‘자격을 주기엔 부족한 교육’으로 격하되는 장면이다. 교육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학생들의 노력도, 평가 기준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오직 행정 분류와 해석뿐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학생들의 미래를 통째로 흔든다. 이것을 ‘불가피한 혼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학생의 삶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정책 집행 방식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의 불안과 고통이 사실상 압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흔들릴수록, 방학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할수록,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가 행정에 전달된다. 이는 우리가 기대했던 현 정부의 교육 행정 방식과도 거리가 멀다. 고통을 방패로 삼는 집행이다.

“제도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왜 그 변화의 비용은 늘 이미 강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몫인가. 왜 모든 책임이 이유도 설명 없이 개인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왜 국가는 경과 규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끝내 외면하는가.

최근 언어재활사 자격 요건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자격 제도를 정비한다는 명분 아래, 이미 제도를 믿고 들어온 학생들이 “적어도 우리만큼은 보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이 현재진행형 논쟁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문제는 기준이 아니라, 책임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다.

특수교육 재교육과정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규칙을 무너뜨려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 하나다. 이미 국가를 믿고 돈과 시간, 인생을 걸어버린 재학생만큼은 버리지 말아 달라는 요구다. 이것이 과도하다면, 국가는 앞으로 무엇을 믿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책은 사람 위에 존재할 수 없다. 제도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행정의 편의를 위해 학생들의 삶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선택이며, 그 결과는 결국 국가에 대한 신뢰의 붕괴로 되돌아올 것이다. 교육은 신뢰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 신뢰를 깨뜨리는 정책은, 결국 교육 자체를 파괴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말장난이 아니다. 해석 싸움도, 책임 떠넘기기도 아니다. 이미 학생들이 치러버린 대가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한 즉각적인 경과 규정이다. 이것이 없다면, 이 사태는 정책 실패를 넘어 윤리적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나는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이 분명한 사실이 알려지고 억울한 학생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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