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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상품인가, 권리인가 "어느 중증 장애인의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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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637회 작성일 26-03-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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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병원은 때로 시장처럼 작동한다. 진료는 서비스가 되고, 환자는 소비자가 된다. 의료기술은 발전했고 병원은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의료는 상품인가, 아니면 인간의 권리인가.

사회복지학에서는 이를 ‘의료의 상품화(commodification)’와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문제로 설명한다. 상품화란 의료를 시장에서 사고파는 서비스로 보는 관점이다.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지불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제한된 치료만 받는다. 반대로 탈상품화는 의료를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본다. 개인의 경제적 능력과 무관하게 필요한 의료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토론이 아니다.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는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현실적인 문제다.

중증 장애인의 삶은 의료와 분리될 수 없다. 재활치료, 보조기기, 만성질환 관리, 정기적인 병원 방문은 일상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의료가 시장 논리에 따라 가격이 매겨질 때 발생한다. 치료는 계속 필요하지만 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생존을 위한 의료가 ‘구매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복지국가 연구에서 탈상품화 개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학자는 덴마크 사회학자 괴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이다. 그는 복지국가의 핵심 기능을 “시장에서의 생존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시민이 노동시장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는 이 원리가 가장 분명하게 적용되는 영역이다.

이 원칙을 현실 제도로 구현한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북유럽 국가들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의료체계는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 중심 구조다. 환자는 병원 이용 시 일정한 본인부담금을 내지만, 연간 부담액에는 상한이 있어 일정 금액을 넘으면 그 이후 진료는 사실상 무료에 가깝게 제공된다.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일수록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일을 제도적으로 막아 놓은 것이다.

덴마크 역시 탈상품화 원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나라다. 일반 진료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의료체계에서 제공되며, 대부분의 국민이 별도의 비용 없이 주치의(primary physician)를 통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재활치료나 장기질환 관리처럼 지속적인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영역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제공한다.

또 다른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에서는 환자의 연간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을 법적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을 지출하면 ‘프리카르트(free card)’가 발급되어 이후 진료비가 면제된다. 장기 환자나 장애인의 의료 접근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제도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의료를 시장 경쟁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의 영역으로 본다는 점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의료를 단순히 치료 서비스로 보지 않는다. 건강을 시민권의 일부로 이해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 위험을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북유럽 모델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높은 조세 부담, 의료 대기시간 문제 등 여러 비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건강을 시장의 가격표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원리로 다루려는 노력이다.

한국의 의료제도는 이 두 원리가 혼합된 구조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보편적 제도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비급여와 민간보험 시장이 확대되면서 의료의 상품화 요소도 강하게 작동한다. 그 결과 같은 질병이라도 경제력에 따라 치료 경험이 달라지는 현실이 나타난다.

심한 정도 장애인의 삶에서 의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재활치료 한 번을 미루는 일은 단순히 병원 방문을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 신체 기능의 악화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가 상품으로만 취급된다면 장애인의 삶은 언제든지 시장의 가격표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료의 탈상품화는 단순한 복지 확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인간의 취약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이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환자가 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평생 환자로 살아간다. 중증 장애인의 몸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의료는 과연 사고파는 상품인가, 아니면 함께 보장해야 할 인간의 권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그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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