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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어의 날, ‘보이는 언어’는 있는데 ‘보이는 농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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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3,071회 작성일 26-02-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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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변강석 강남대학교 초빙교수
기자명기고/변강석 입력 2026.02.03 09:30

농인(청각장애인)은 지금도 많은 자리에서 ‘시청자(대화에 참여해도 발화권을 갖지 못한 채 보기만 하게 되는 존재)’로 남아 있다. 회의실에서도, 학교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심지어 가족의 식탁에서도 농인은 대화의 중심청자가 아니라 주변청자로 밀려난다.

통역이 있어도 말 차례는 쉽게 돌아오지 않고, 맥락은 끊기며, 대화는 이미 다음 주제로 넘어가 있다. 결국 농인은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 ‘참여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된다. 존재는 있지만, 호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저 ‘통역이 갖는 구조적 한계’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통역이 있다는 것만으로 농인의 참여권이 온전히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발화 속도와 말 차례, 의사결정의 구조와 관행이 구어 중심으로 설계된 상태에서 농인은 시간차를 두고 이어지는 통역을 통해 메시지나 논의 내용을 계속 뒤늦게 따라가게 되거나, 내용을 이해했어도 대화나 논의에 끼어들 틈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시청자화’의 구조다. 단언컨대, 농인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발화의 주체여야 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원칙이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부디 수어의 날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모두가 알아주길 바란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을 ‘주변인’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구조가 여전히 우리의 일상 곳곳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늘만큼은 수어를 축하한다는 말에 그치지 말고, 농인이 ‘대화의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규범을 바꿔보자.

회의와 행사에서 말 차례를 ‘화자의 발화 완료 시점이 아닌 통역사의 통역 완료 시점을 기준으로’ 재조정하고, 농인과 수어와 관련한 모든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 시작점에서부터 농인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한국수어의 날은 수어를 기념하는 날이기 이전에, 농인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게 만드는 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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