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나는 낮에도 깜깜한데?” 작가 김현영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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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3,519회 작성일 26-01-27 10:20본문
시각장애 심리상담가가 전하는 삶의 태도
기자명칼럼니스트 서인환 입력 2026.01.26 17:20
김현영은 1961년생으로 다른 사람 같으면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아직도 꿈이 많다. 그녀의 성장 과정과 실명이 바꾸어 놓은 운명,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며 꿈을 꾸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진다.
김현영은 40대 중반까지 발레를 전공하여 공연과 대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교수 임용 준비 중이던 그녀에게 그동안 야맹증 정도로 낮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드디어 실명이 찾아왔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유전성 질환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집안 조상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돌연변이라고 했다. 대학 강의를 하려면 시력이 필수적인데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었다. 당시 6학년인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가사 일과 남편 내조는 너무 어려웠다. 남편은 조금도 이해하거나 인내해 주지 않았다. 앞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생활도 발레도 결별을 해야 했다.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감당할 수 없었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주인공인 군인은 사고로 실명을 하자,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주인공은 여인의 향기를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여기서 여인은 가장 매력적인 삶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김현영은 그런 향기가 무엇인지 당시는 알 수 없었다.
떠나고 싶었고 숨고 싶었다. 주위에서 치료할 수 있다며 별의별 방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어느 스님이 기치료를 소개해 주었는데, 반신반의하며 기치료를 받던 중 천도제를 지내야 한다며 돈을 요구하였다. 나의 일처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의 말에 조금의 희망을 걸었지만 모두 부질없음을 알았다.
김현영은 서울을 떠나고 싶었고, 대전으로 혼자 이사해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빈사의 백조’가 죽어가듯 1년 가까이 고독을 삼키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시각장애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다. 2010년에 장애인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먼저 대전산성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와 흰지팡이 사용법과 컴퓨터를 배웠다. 그리고 볼링을 배워 선수 생활도 하게 됐다. 발레를 한 몸짓은 볼링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했다.
48세에 마음을 다잡고 공무원 시험을 2년간 준비했다. 하지만 시험일에 장소를 잘못 알아 시험을 치르지도 못하고 공무원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서 학습을 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익힌 것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셈이었다.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의 동료상담에 마음이 끌렸다.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알아보니 학부에서 전공자가 아니면 어렵다고 하여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먼저 입학했다. 평생교육원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보니 장애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기도 함을 알게 되었다. 당사자가 되니 경험이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전에서 서울로 오가며 수업을 듣는 동안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보행법을 배웠지만 흰지팡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차역에서 공익요원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데, 흰지팡이를 들고 있거나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을 찾아보고는 그냥 가 버려 공익요원을 만나지 못한 적도 있었고, 승차하는 역에서의 공익요원이 하차하는 역에 연락하는 것을 깜빡하여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안내자를 기다리는 매표소 옆 의자는 너무나 불편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하려고 하자, 심리상담은 임상이 중요하고 임상에는 관찰 등 시력을 필요로 한다며 교수는 수락해 주지 않았다. 석사과정에서의 지도교수가 퇴직하지만 않았어도 받아 주셨을 것인데 너무나 애가 탔다. 상담은 수련 과정이 중요한데 언제까지 눈을 핑계로 삼을 것인가라는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청력을 이용하여 학습하는 방법을 좀 더 세련되게 익히게 해 주었다.
결국 고려대학교 특수교육과 박사과정으로 선택했다. 김현영은 2017년 입학한 박사과정을 2023년에 학위를 받게 되었다. 장애인계에서 활동을 하면서 강의를 조금씩 수강하였기 때문이다. 한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일하면서 서울과 부산에 있지만 중부권에는 없는 장애인자립생활대학을 설립해 초대 학장을 맡기도 하였고,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치는 사람이 없어 곤란해 하자 자진하여 장구를 맡아 자립대학 행사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20년에는 장애인기업지원센터의 지원으로 김현영심리상담소를 개설했다.
김현영은 심리치료사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심리학자를 소개한다. 에릭 에릭슨은 의미치료를 주창한 사람으로 정체성 찾기, 결정적인 시기에 만나는 사람의 영향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의미부여가 가치를 만든다. 빅터 프랭클은 사람중심 심리상담을 강조한다.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사람으로 삶의 의지가 있는 사람이 생존율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의미 부여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고 말한다. 칼 로저스는 상대의 존중, 귀 기울이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자다. 은사 한성열 교수는 칼 로저스 제자로 국내에 상담심리학을 처음 소개한 분이다.
수업 시간에 프로이트의 방어기재인 ‘꾀병’을 설명하면서 누구든지 꾀병을 부린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교수의 말에 김현영 작가는 ‘저는 없다’고 하자, 교수는 ‘정신병자 같은 소리’라고 하였다. 교수에게 ‘저는 미쳤나 봐요’라고 말할 정도로 김현영 작가는 사실 타인으로부터 많은 방어막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이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라는 생각에 공감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현영은 마음의 정리 정돈을 중요시한다. 정리는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가지런히 두는 것이다. 김현영은 대전과학기술대학교에서 ‘의사소통과 상담심리’를 강의하는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양상과정 강사이기도 하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강사이기도 하다.
김현영은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도움은 최소화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 유형이 다른 장애인끼리 서로 도우며 지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척수장애인 지인 집에 갔는데 강아지가 발을 물어 피가 나는데도 감각이 없어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야기와 상담실에 찾아왔는데 식사를 하지 못해 빵을 주면서 손을 사용하지 못해 김 작가가 상대의 입에 넣어 준다는 것이 코에 대어 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김현영은 빵을 들고 있고 그 사람에게 ‘와서 물어가’라고 했다. 커피가 뜨거워 위험할 수도 있어 식혀서 빨대를 꽂아 주었는데, 장애인은 따뜻한 커피를 마실 권리도 없는가 생각한다.
장애인이 되기 전 유도선수였던 척수장애인이 자동차로 집 앞에 데려다 주었지만, 내려서 저자를 안내해 주지는 못했다.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무섭다며 잡기를 꺼려서 말로만 좌우를 말해 달라고 해서 현관을 겨우 찾아간 이야기도 가슴 아프다. 타 유형 장애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대학에서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부 학생만 서비스를 해 주어 대학원생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건의하여 혜택을 받을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석사과정에서는 학우의 도움을 그래도 받기가 수월했는데, 박사과정은 각자가 바빠 공부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밤이 되어 한 학우가 깜깜한데 대전까지 어떻게 가려는지 걱정하자 김현영 작가는 ‘얘, 낮에도 나는 깜깜한데?’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인다. 이것을 책 제목으로 뽑았다.
집단상담을 하면서 시각장애인들과 제주도 올래길을 걷는 행사를 준비하여 우천으로 고생을 했지만 참여자들이 만족했던 이야기, 매주 수요일 KBS에 출연하여 시각장애인 심리상담을 하는 이야기는 배운 것을 어떻게 장애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양에서는 고통 순위 1순위가 배우자 사망이고. 한국에서는 자녀 사망이란다. 하지만 2위는 공통으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란다. 장애가 고통이 아니라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심리적 접근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김현영 작가는 엄마가 자신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한다. 늘 장녀로서 형제들에게 본보기가 되라고 하셨고, 빈틈 없는 자식 사랑과 집안일처리, 그리고 열정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이란다.
김현영 작가는 두 번째 출판으로 그동안 경험한 심리상담 사례집을 내어 장애인들의 긍정적 태도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한국장애인상담협회를 설립해 현재 협회장을 역임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장애인 심리상담사를 양성하고 싶어한다. 현재 장애인심리상담사라는 자격제도도 없고 설 자리도 마땅하지 않지만,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다. 장애계가 이러한 인재를 잘 활용하고 일할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음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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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 iwser@naver.com
기자명칼럼니스트 서인환 입력 2026.01.26 17:20
김현영은 1961년생으로 다른 사람 같으면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아직도 꿈이 많다. 그녀의 성장 과정과 실명이 바꾸어 놓은 운명,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며 꿈을 꾸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진다.
김현영은 40대 중반까지 발레를 전공하여 공연과 대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교수 임용 준비 중이던 그녀에게 그동안 야맹증 정도로 낮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드디어 실명이 찾아왔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유전성 질환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집안 조상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돌연변이라고 했다. 대학 강의를 하려면 시력이 필수적인데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었다. 당시 6학년인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가사 일과 남편 내조는 너무 어려웠다. 남편은 조금도 이해하거나 인내해 주지 않았다. 앞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생활도 발레도 결별을 해야 했다.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감당할 수 없었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주인공인 군인은 사고로 실명을 하자,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주인공은 여인의 향기를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여기서 여인은 가장 매력적인 삶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김현영은 그런 향기가 무엇인지 당시는 알 수 없었다.
떠나고 싶었고 숨고 싶었다. 주위에서 치료할 수 있다며 별의별 방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어느 스님이 기치료를 소개해 주었는데, 반신반의하며 기치료를 받던 중 천도제를 지내야 한다며 돈을 요구하였다. 나의 일처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의 말에 조금의 희망을 걸었지만 모두 부질없음을 알았다.
김현영은 서울을 떠나고 싶었고, 대전으로 혼자 이사해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빈사의 백조’가 죽어가듯 1년 가까이 고독을 삼키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시각장애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다. 2010년에 장애인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먼저 대전산성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와 흰지팡이 사용법과 컴퓨터를 배웠다. 그리고 볼링을 배워 선수 생활도 하게 됐다. 발레를 한 몸짓은 볼링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했다.
48세에 마음을 다잡고 공무원 시험을 2년간 준비했다. 하지만 시험일에 장소를 잘못 알아 시험을 치르지도 못하고 공무원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서 학습을 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익힌 것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셈이었다.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의 동료상담에 마음이 끌렸다.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알아보니 학부에서 전공자가 아니면 어렵다고 하여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먼저 입학했다. 평생교육원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보니 장애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기도 함을 알게 되었다. 당사자가 되니 경험이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전에서 서울로 오가며 수업을 듣는 동안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보행법을 배웠지만 흰지팡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차역에서 공익요원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데, 흰지팡이를 들고 있거나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을 찾아보고는 그냥 가 버려 공익요원을 만나지 못한 적도 있었고, 승차하는 역에서의 공익요원이 하차하는 역에 연락하는 것을 깜빡하여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안내자를 기다리는 매표소 옆 의자는 너무나 불편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하려고 하자, 심리상담은 임상이 중요하고 임상에는 관찰 등 시력을 필요로 한다며 교수는 수락해 주지 않았다. 석사과정에서의 지도교수가 퇴직하지만 않았어도 받아 주셨을 것인데 너무나 애가 탔다. 상담은 수련 과정이 중요한데 언제까지 눈을 핑계로 삼을 것인가라는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청력을 이용하여 학습하는 방법을 좀 더 세련되게 익히게 해 주었다.
결국 고려대학교 특수교육과 박사과정으로 선택했다. 김현영은 2017년 입학한 박사과정을 2023년에 학위를 받게 되었다. 장애인계에서 활동을 하면서 강의를 조금씩 수강하였기 때문이다. 한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일하면서 서울과 부산에 있지만 중부권에는 없는 장애인자립생활대학을 설립해 초대 학장을 맡기도 하였고,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치는 사람이 없어 곤란해 하자 자진하여 장구를 맡아 자립대학 행사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20년에는 장애인기업지원센터의 지원으로 김현영심리상담소를 개설했다.
김현영은 심리치료사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심리학자를 소개한다. 에릭 에릭슨은 의미치료를 주창한 사람으로 정체성 찾기, 결정적인 시기에 만나는 사람의 영향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의미부여가 가치를 만든다. 빅터 프랭클은 사람중심 심리상담을 강조한다.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사람으로 삶의 의지가 있는 사람이 생존율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의미 부여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고 말한다. 칼 로저스는 상대의 존중, 귀 기울이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자다. 은사 한성열 교수는 칼 로저스 제자로 국내에 상담심리학을 처음 소개한 분이다.
수업 시간에 프로이트의 방어기재인 ‘꾀병’을 설명하면서 누구든지 꾀병을 부린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교수의 말에 김현영 작가는 ‘저는 없다’고 하자, 교수는 ‘정신병자 같은 소리’라고 하였다. 교수에게 ‘저는 미쳤나 봐요’라고 말할 정도로 김현영 작가는 사실 타인으로부터 많은 방어막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이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라는 생각에 공감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현영은 마음의 정리 정돈을 중요시한다. 정리는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가지런히 두는 것이다. 김현영은 대전과학기술대학교에서 ‘의사소통과 상담심리’를 강의하는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양상과정 강사이기도 하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강사이기도 하다.
김현영은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과 교류하면서 도움은 최소화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 유형이 다른 장애인끼리 서로 도우며 지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척수장애인 지인 집에 갔는데 강아지가 발을 물어 피가 나는데도 감각이 없어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야기와 상담실에 찾아왔는데 식사를 하지 못해 빵을 주면서 손을 사용하지 못해 김 작가가 상대의 입에 넣어 준다는 것이 코에 대어 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김현영은 빵을 들고 있고 그 사람에게 ‘와서 물어가’라고 했다. 커피가 뜨거워 위험할 수도 있어 식혀서 빨대를 꽂아 주었는데, 장애인은 따뜻한 커피를 마실 권리도 없는가 생각한다.
장애인이 되기 전 유도선수였던 척수장애인이 자동차로 집 앞에 데려다 주었지만, 내려서 저자를 안내해 주지는 못했다.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무섭다며 잡기를 꺼려서 말로만 좌우를 말해 달라고 해서 현관을 겨우 찾아간 이야기도 가슴 아프다. 타 유형 장애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대학에서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부 학생만 서비스를 해 주어 대학원생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건의하여 혜택을 받을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석사과정에서는 학우의 도움을 그래도 받기가 수월했는데, 박사과정은 각자가 바빠 공부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밤이 되어 한 학우가 깜깜한데 대전까지 어떻게 가려는지 걱정하자 김현영 작가는 ‘얘, 낮에도 나는 깜깜한데?’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인다. 이것을 책 제목으로 뽑았다.
집단상담을 하면서 시각장애인들과 제주도 올래길을 걷는 행사를 준비하여 우천으로 고생을 했지만 참여자들이 만족했던 이야기, 매주 수요일 KBS에 출연하여 시각장애인 심리상담을 하는 이야기는 배운 것을 어떻게 장애인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양에서는 고통 순위 1순위가 배우자 사망이고. 한국에서는 자녀 사망이란다. 하지만 2위는 공통으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란다. 장애가 고통이 아니라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심리적 접근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김현영 작가는 엄마가 자신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한다. 늘 장녀로서 형제들에게 본보기가 되라고 하셨고, 빈틈 없는 자식 사랑과 집안일처리, 그리고 열정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이란다.
김현영 작가는 두 번째 출판으로 그동안 경험한 심리상담 사례집을 내어 장애인들의 긍정적 태도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한국장애인상담협회를 설립해 현재 협회장을 역임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장애인 심리상담사를 양성하고 싶어한다. 현재 장애인심리상담사라는 자격제도도 없고 설 자리도 마땅하지 않지만,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다. 장애계가 이러한 인재를 잘 활용하고 일할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음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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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 iws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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