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요구와 인권의 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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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3,682회 작성일 26-01-22 15:36본문
요구의 정당성과 관계 책임의 경계
차별 경험 이후 당사자 각성의 필요성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양희 입력 2026.01.22 10:22 수정 2026.01.22 12:00
단순한 아쉬움이나 항의 수준을 넘어, 마치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배제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분노를 표출하는 일도 적지 않다. 때로는 “차별당했다”는 표현이 등장하고, 담당자가 사과를 요구받는 상황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원칙은 사라지고 설명과 절차는 변명으로 치환된다. 이런 장면은 종종 장애인의 심한 요구 ‘갑질’로 보여질 수 있지만, 그 단어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이 현상은 훨씬 복합적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장애인의 분노와 불신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삶은 오랜 시간 선택지 밖에 머물러 왔다. 교육, 고용, 문화, 돌봄의 영역에서 늘 “자리가 없다”, “다음에 가능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선착순이나 기준이라는 중립적 장치조차 개인적 배제로 인식되기 쉽다. 작은 불편 하나가 과거의 차별 경험과 겹쳐지며 과도한 감정으로 증폭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필요하다. 차별의 경험은 이해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특정 개인에게 감정을 투사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설명을 듣지 않으려 하거나, 불가능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과를 강요하는 순간, 권리의 언어는 관계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변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은 미묘한 권력의 이동이다. 장애인은 사회 구조 속에서는 약자이지만, 서비스 제공 관계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 ‘차별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민원과 평가에 대한 압박은 담당자를 쉽게 위축시킨다. 그 결과, 부당한 요구조차 문제 제기라는 이름으로 통과되고, 사과는 갈등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이 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왜곡된 학습이 굳어진다. 요구는 점점 강해지고, 관계는 점점 소진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장애인에게 갑질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 우려 역시 타당하다. 장애인의 문제적 행동을 말하는 순간, 혐오와 낙인으로 오해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방식일 수는 없다. 내부의 균열을 외면한 운동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장애인도 잘못할 수 있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주체로 서게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통제나 훈계가 아니라, 명확한 경계 설정이다. 운영 주체는 감정에 공감하되, 절차와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불편에 사과로 대응하는 방식은 갈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운다. 동시에 장애인 당사자 역시 자신의 요구가 제도의 개선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감정을 떠넘기고 있는지 점검할 언어와 태도를 배워야 한다.
이제는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하나의 질문을 던질 시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라는 위치에만 머물러도 되는가. 아니면 인권의 주체로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책임을 함께 인식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가. 각성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불만을 제기하기 전에 한 번 더 구조를 생각해보는 태도, 스스로의 요구가 타인의 노동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자세, 그리고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장애인 인권은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인권은 위계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짜는 일이다. 그 과정에는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고, 사회의 책임도 필요하다. 동시에 당사자의 성숙 역시 필요하다. 상처를 가졌다는 이유로 모든 행동이 면책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장애인도 권리를 말하는 만큼, 책임을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갑질’이라는 불편한 표현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우리는 인권을 어디까지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장애인 인권은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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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양희 ena70@hanmail.net
차별 경험 이후 당사자 각성의 필요성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양희 입력 2026.01.22 10:22 수정 2026.01.22 12:00
단순한 아쉬움이나 항의 수준을 넘어, 마치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배제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분노를 표출하는 일도 적지 않다. 때로는 “차별당했다”는 표현이 등장하고, 담당자가 사과를 요구받는 상황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원칙은 사라지고 설명과 절차는 변명으로 치환된다. 이런 장면은 종종 장애인의 심한 요구 ‘갑질’로 보여질 수 있지만, 그 단어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이 현상은 훨씬 복합적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장애인의 분노와 불신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삶은 오랜 시간 선택지 밖에 머물러 왔다. 교육, 고용, 문화, 돌봄의 영역에서 늘 “자리가 없다”, “다음에 가능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선착순이나 기준이라는 중립적 장치조차 개인적 배제로 인식되기 쉽다. 작은 불편 하나가 과거의 차별 경험과 겹쳐지며 과도한 감정으로 증폭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필요하다. 차별의 경험은 이해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특정 개인에게 감정을 투사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설명을 듣지 않으려 하거나, 불가능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과를 강요하는 순간, 권리의 언어는 관계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변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은 미묘한 권력의 이동이다. 장애인은 사회 구조 속에서는 약자이지만, 서비스 제공 관계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다. ‘차별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민원과 평가에 대한 압박은 담당자를 쉽게 위축시킨다. 그 결과, 부당한 요구조차 문제 제기라는 이름으로 통과되고, 사과는 갈등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이 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왜곡된 학습이 굳어진다. 요구는 점점 강해지고, 관계는 점점 소진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장애인에게 갑질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 우려 역시 타당하다. 장애인의 문제적 행동을 말하는 순간, 혐오와 낙인으로 오해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방식일 수는 없다. 내부의 균열을 외면한 운동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장애인도 잘못할 수 있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주체로 서게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통제나 훈계가 아니라, 명확한 경계 설정이다. 운영 주체는 감정에 공감하되, 절차와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불편에 사과로 대응하는 방식은 갈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운다. 동시에 장애인 당사자 역시 자신의 요구가 제도의 개선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감정을 떠넘기고 있는지 점검할 언어와 태도를 배워야 한다.
이제는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하나의 질문을 던질 시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차별받는 존재’라는 위치에만 머물러도 되는가. 아니면 인권의 주체로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책임을 함께 인식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가. 각성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불만을 제기하기 전에 한 번 더 구조를 생각해보는 태도, 스스로의 요구가 타인의 노동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자세, 그리고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장애인 인권은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인권은 위계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짜는 일이다. 그 과정에는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고, 사회의 책임도 필요하다. 동시에 당사자의 성숙 역시 필요하다. 상처를 가졌다는 이유로 모든 행동이 면책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장애인도 권리를 말하는 만큼, 책임을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갑질’이라는 불편한 표현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우리는 인권을 어디까지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장애인 인권은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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