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랑" 23년에 다사보는 영화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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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5,492회 작성일 25-12-23 11:26본문
기자명칼럼니스트 박선희 입력 2025.12.22 17:37 수정 2025.12.23 10:03
그저 건들건들 거리며 “형씨, 담배 한 개비만. 이왕이면 불도.” 버스정류장에서 이런 옷차림의 건들거리는 사내가 말을 건넨다면 누구라도, 무엇이더라도 그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것, 생경스러운 것은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주니까.
아마 오랜만에 찾아간 것 같은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어디로 이사 갔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가 찾는 사람들은 그가 낯선 곳에서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연락이 닿겠지 하고 빌린 전화기로 몇 통을 돌려봐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마치 그가 나타났다고 비상령이라도 울린 것처럼. 받지 않는 전화를 돌려가며 먹은 술과 삼겹살은 그를 무전취식자로 만들었다.
경찰서에 가서야 나타난 동생은 반가워 죽겠는 그와는 다르게 떨떠름한 표정이다. 그가 감옥에 가 있던 시간에 가족은 이사를 했다. 경기도 나빠지고 집도 줄이고.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형도 떨떠름하긴 마찬가지다. 건들건들 속없이 웃는 그에게 “언제 정신 차릴래?”
중국집 배달원으로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오늘 그는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허름한 빌라를 찾아갔다. 그의 바로 전 범죄가 된 과실치사, 그 피해자 가족의 집이다. 좁은 계단으로는 이사가 한창이다. 이사 가는 집은 그가 찾아온 그 집, 피해자 가족의 집이다. 그를 알아본 40대 남자가 문전박대한다. 과일 바구니를 돌려주며 어서 썩 꺼지라고. 쫓겨나다 설핏 보았다. 온몸을 비틀고 있는 여자.
한 공주는 창가로 들어온 햇빛을 손거울로 천장에 비춰 나타나는 모양을 보는 게 유일한 취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뒤틀리는 몸과 얼굴. 천장에 비친 거울에 반사된 그림은 나비가 되기도 하고 꽃잎으로 날기도 한다. 종두는 건들걸음으로 이삿짐 차를 세우고 묻는다.
“저런 동생 혼자 두고 자기들끼리 이사 가는 거예요?”
같은 시간 공주는, 혼자 남겨진 집에서 거울놀이를 하다 집어던진다. 조각난 거울처럼 그녀의 마음도 조각조각 찢겨 나가는 것 같다.
운다고, 하염없이 몸을 비틀며 운다 한들, 들여다봐 줄 사람도 비틀린 어깨를 토닥여 줄 사람도 없는데, 공주는 그렇게 버려졌다.
그의 마음속에선 공주가 까끌거리며 신경이 쓰인다. 꽃다발을 몰래 사다 주고 (여기까진 낭만적인데!) 열쇠 두는 곳을 알게 되고
몰래 들어가 얼굴도 만져 보고, 발길도 맞춰 보고… 하다가, 하다가, 비릿하고 원초적인 욕망을 표출했다. 공주는 온갖 몸부림 으로 저항하다가 혼절했다. 욕실로 데려가 물을 끼얹어 공주를 깨워 놓고 도망쳤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라고 생각했겠지.
비틀리는 몸이지만 얼굴을 만진 순간 깜짝 놀랐겠지.너무나 사랑스러워 심장이 멎는 듯했겠지. 그랬겠지…이 바보, 여자 마음도 모르는 바보. 사랑스러우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 는, 저 비린내 나는 날것의 사내.
시간이 지나며 공주의 마음은 풀리고, 그가 궁금해진다. 지나가는 말로 연락하고 싶으면 하라고 화장대에 꽂아 둔 그의 연락처를 꺼내 전화를 한다. 다음 날 아침에 달려온 그는 옥상으로 공주를 데려가 작은 몸을 휠체어에 태워 씽씽 밀어 준다.
하늘이다, 구름이다, 햇볕이다.
처음 온몸으로 자연을 맞는 공주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뭐 별것 아닌 상상, 그에게 몰래 꿀밤을 주고 시치미를 뗀다든가, 그런 작은 일로 삐지고 그래요. 면박을 준다든가…그렇게 너무도 사소한 일상이 그녀에겐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도 아직 꿈에서는 달린다. 지각해서 달리고, 아이 잡으러 달리고, 친구들과 달린다.
깨고 나면 꿈속에서까지 일을 하는 게 좀 억울하긴 하다. 하늘을 난다거나, 기업 총수가 된다거나, 가부좌 틀고 있는 스님이 된다거나, 좀 우상향적인 꿈을 꾸고 싶지만 쉽지 않다. 꿈도 경험치로만 꾸어지는 건가!
'오아시스'는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보고, 2025년에 다시 소환하여 보았다. 개봉관에서 볼 땐 누구랑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매우 가슴 여며지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었다. 다시 볼 때도 역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랑 이야기로군.
바깥세상을 두루 보여 주던 장면 중에서 노래방에서 부르지 못한 노래를 마지막 지하철을 보내고, 공주의 상상 속에서 부르던 노래가 그녀의 마음을 전한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안치환의 노래가 저리 잘 어울리는 장면이 있을까. 그날 밤, “가지 말아요.” 자고 가라는 뜻,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가 해석한 그녀의 말은 그랬다. 그들의 사랑이 역사가 되는 순간, 소외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지만 그건 사랑이다. 슬픈 사랑이고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
영화 〈오아시스〉, 2002년 대한민국 영화
감독: 이창동
주연: 문소리(한공주), 설경구(홍종두)
영화 보기: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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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건들건들 거리며 “형씨, 담배 한 개비만. 이왕이면 불도.” 버스정류장에서 이런 옷차림의 건들거리는 사내가 말을 건넨다면 누구라도, 무엇이더라도 그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것, 생경스러운 것은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주니까.
아마 오랜만에 찾아간 것 같은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어디로 이사 갔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가 찾는 사람들은 그가 낯선 곳에서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연락이 닿겠지 하고 빌린 전화기로 몇 통을 돌려봐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마치 그가 나타났다고 비상령이라도 울린 것처럼. 받지 않는 전화를 돌려가며 먹은 술과 삼겹살은 그를 무전취식자로 만들었다.
경찰서에 가서야 나타난 동생은 반가워 죽겠는 그와는 다르게 떨떠름한 표정이다. 그가 감옥에 가 있던 시간에 가족은 이사를 했다. 경기도 나빠지고 집도 줄이고.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형도 떨떠름하긴 마찬가지다. 건들건들 속없이 웃는 그에게 “언제 정신 차릴래?”
중국집 배달원으로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오늘 그는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허름한 빌라를 찾아갔다. 그의 바로 전 범죄가 된 과실치사, 그 피해자 가족의 집이다. 좁은 계단으로는 이사가 한창이다. 이사 가는 집은 그가 찾아온 그 집, 피해자 가족의 집이다. 그를 알아본 40대 남자가 문전박대한다. 과일 바구니를 돌려주며 어서 썩 꺼지라고. 쫓겨나다 설핏 보았다. 온몸을 비틀고 있는 여자.
한 공주는 창가로 들어온 햇빛을 손거울로 천장에 비춰 나타나는 모양을 보는 게 유일한 취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뒤틀리는 몸과 얼굴. 천장에 비친 거울에 반사된 그림은 나비가 되기도 하고 꽃잎으로 날기도 한다. 종두는 건들걸음으로 이삿짐 차를 세우고 묻는다.
“저런 동생 혼자 두고 자기들끼리 이사 가는 거예요?”
같은 시간 공주는, 혼자 남겨진 집에서 거울놀이를 하다 집어던진다. 조각난 거울처럼 그녀의 마음도 조각조각 찢겨 나가는 것 같다.
운다고, 하염없이 몸을 비틀며 운다 한들, 들여다봐 줄 사람도 비틀린 어깨를 토닥여 줄 사람도 없는데, 공주는 그렇게 버려졌다.
그의 마음속에선 공주가 까끌거리며 신경이 쓰인다. 꽃다발을 몰래 사다 주고 (여기까진 낭만적인데!) 열쇠 두는 곳을 알게 되고
몰래 들어가 얼굴도 만져 보고, 발길도 맞춰 보고… 하다가, 하다가, 비릿하고 원초적인 욕망을 표출했다. 공주는 온갖 몸부림 으로 저항하다가 혼절했다. 욕실로 데려가 물을 끼얹어 공주를 깨워 놓고 도망쳤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라고 생각했겠지.
비틀리는 몸이지만 얼굴을 만진 순간 깜짝 놀랐겠지.너무나 사랑스러워 심장이 멎는 듯했겠지. 그랬겠지…이 바보, 여자 마음도 모르는 바보. 사랑스러우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 는, 저 비린내 나는 날것의 사내.
시간이 지나며 공주의 마음은 풀리고, 그가 궁금해진다. 지나가는 말로 연락하고 싶으면 하라고 화장대에 꽂아 둔 그의 연락처를 꺼내 전화를 한다. 다음 날 아침에 달려온 그는 옥상으로 공주를 데려가 작은 몸을 휠체어에 태워 씽씽 밀어 준다.
하늘이다, 구름이다, 햇볕이다.
처음 온몸으로 자연을 맞는 공주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뭐 별것 아닌 상상, 그에게 몰래 꿀밤을 주고 시치미를 뗀다든가, 그런 작은 일로 삐지고 그래요. 면박을 준다든가…그렇게 너무도 사소한 일상이 그녀에겐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도 아직 꿈에서는 달린다. 지각해서 달리고, 아이 잡으러 달리고, 친구들과 달린다.
깨고 나면 꿈속에서까지 일을 하는 게 좀 억울하긴 하다. 하늘을 난다거나, 기업 총수가 된다거나, 가부좌 틀고 있는 스님이 된다거나, 좀 우상향적인 꿈을 꾸고 싶지만 쉽지 않다. 꿈도 경험치로만 꾸어지는 건가!
'오아시스'는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보고, 2025년에 다시 소환하여 보았다. 개봉관에서 볼 땐 누구랑 봤는지, 어디서 봤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매우 가슴 여며지는 영화로 기억되고 있었다. 다시 볼 때도 역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랑 이야기로군.
바깥세상을 두루 보여 주던 장면 중에서 노래방에서 부르지 못한 노래를 마지막 지하철을 보내고, 공주의 상상 속에서 부르던 노래가 그녀의 마음을 전한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안치환의 노래가 저리 잘 어울리는 장면이 있을까. 그날 밤, “가지 말아요.” 자고 가라는 뜻,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가 해석한 그녀의 말은 그랬다. 그들의 사랑이 역사가 되는 순간, 소외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지만 그건 사랑이다. 슬픈 사랑이고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
영화 〈오아시스〉, 2002년 대한민국 영화
감독: 이창동
주연: 문소리(한공주), 설경구(홍종두)
영화 보기: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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