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프레임, 그 너머의 평범한 권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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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991회 작성일 26-03-10 13:30본문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불쑥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남자아이들만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를 하라고 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 얻어낸 자유 시간, 우리는 한 시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누볐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다시 들어선 교실의 분위기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자기들끼리만 무언가 소곤거릴 뿐, 남자아이들에게는 도통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그 서먹한 공기 속에서 한참을 머쓱하게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날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소위 ‘성교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교육은 오늘날의 보편적인 성평등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의 2차 성장에 대한 안내와 더불어,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지 않도록 옷차림을 조심하고 위험한 자리를 피해야 한다”라는 예방적 수칙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 부모 세대와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는 이러한 성편향적인 논리를 당연한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왜곡된 사고는 우리 사회가 남녀의 성 역할과 가치를 재단하는 견고한 기준이 되었다.
1993년 초,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주한 장벽도 이와 닮아 있었다. 당시 모든 학교 행정은 종이 서류를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시각장애 교사인 내게 거대한 벽이었다. 특히 매시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출석부 기록은 고역이었다. 수업 종이 울리면 교무실 출입문 앞 책꽂이에서 반별 바인더를 꺼내 교실로 향해야 했다.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빽빽하게 그어진 칸 속에 결석한 아이의 이름을 찾아 정확히 체크하는 그 간단한 일이 내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결국 체크하지 못한 출석부를 들고 돌아와 동료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기색으로 부탁을 거듭해야 했다. 수업이 연달아 있을 때는 그조차 여의치 않아 바쁘게 교실로 향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일과 담당 선생님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급기야 교무회의에서는 시각장애 교사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공개적인 핀잔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이 학교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에 깊은 자책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당시 한 선배 선생님은 내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셨다. “도움을 구할 때는 항상 커피 한 잔이라도 챙겨가서 정중히 부탁하고,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장애가 있어도 모범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 충고를 가슴에 새기며 실천하려 애썼고, 제자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대물림하며 그것이 최선의 생존 전략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마음 한구석에서 싹튼 불편함은 점차 거대한 의문으로 변해갔다. ‘이 모든 상황이 정말 나의 부족함 때문만일까? 내가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만 비로소 한 사람 몫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이 구조는 정당한가? 왜 장애인은 게으를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늘 부지런함을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가 이만큼 해주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는 시혜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비장애인과 섞여 살기로 했다면 그 정도 불편은 너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극복의 관점이다.
첫 번째 관점은 장애인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피동적 존재로 가둔다. 특혜를 받는 존재이니만큼 더 도덕적이고 솔선수범하며 비장애인들에게 보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은 장애인의 삶을 옥죈다. 비장애인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때로 나태할 자유를 누리지만, 장애인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늘 ‘모범생’의 가면을 써야 한다.
두 번째 관점은 장애인을 ‘불굴의 승리자’로 신화화한다. 한쪽 다리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정작 장애인이 편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를 개발하거나 보급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시중에서 몇천 원이면 사는 참고서를 몇 달이 지나서야 점자로 받아볼 수 있는 현실에서, 시각장애인의 대학 진학은 ‘승리’로 포장되지만, 그 뒤의 처절한 몸부림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사회는 ‘장애 극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장애인을 가두고, 시스템의 부재를 개인의 의지로 메우라고 강요한다.
여러 해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든 ‘미투(Me Too)’ 캠페인은 이러한 프레임의 전환을 시사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었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라는 자기 검열과 자책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연대는 그 잘못의 화살이 개인이 아닌 잘못된 구조와 가해자에게 향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통해 강요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듯, 장애인 역시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사회적 장벽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장애인의 재활과 사회 참여에 개인의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애가 ‘숙명적인 수고로움’이나 ‘불평등한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굳이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지 않아도,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한 시민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다.
차가운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 다가오는 봄에는 장애라는 프레임에 갇혀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는, 모두가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존엄을 온전히 지키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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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날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소위 ‘성교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교육은 오늘날의 보편적인 성평등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의 2차 성장에 대한 안내와 더불어,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지 않도록 옷차림을 조심하고 위험한 자리를 피해야 한다”라는 예방적 수칙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 부모 세대와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는 이러한 성편향적인 논리를 당연한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왜곡된 사고는 우리 사회가 남녀의 성 역할과 가치를 재단하는 견고한 기준이 되었다.
1993년 초,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주한 장벽도 이와 닮아 있었다. 당시 모든 학교 행정은 종이 서류를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시각장애 교사인 내게 거대한 벽이었다. 특히 매시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출석부 기록은 고역이었다. 수업 종이 울리면 교무실 출입문 앞 책꽂이에서 반별 바인더를 꺼내 교실로 향해야 했다.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빽빽하게 그어진 칸 속에 결석한 아이의 이름을 찾아 정확히 체크하는 그 간단한 일이 내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결국 체크하지 못한 출석부를 들고 돌아와 동료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기색으로 부탁을 거듭해야 했다. 수업이 연달아 있을 때는 그조차 여의치 않아 바쁘게 교실로 향하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일과 담당 선생님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급기야 교무회의에서는 시각장애 교사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공개적인 핀잔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이 학교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에 깊은 자책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당시 한 선배 선생님은 내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셨다. “도움을 구할 때는 항상 커피 한 잔이라도 챙겨가서 정중히 부탁하고,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장애가 있어도 모범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 충고를 가슴에 새기며 실천하려 애썼고, 제자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대물림하며 그것이 최선의 생존 전략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마음 한구석에서 싹튼 불편함은 점차 거대한 의문으로 변해갔다. ‘이 모든 상황이 정말 나의 부족함 때문만일까? 내가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만 비로소 한 사람 몫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이 구조는 정당한가? 왜 장애인은 게으를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늘 부지런함을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가 이만큼 해주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는 시혜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비장애인과 섞여 살기로 했다면 그 정도 불편은 너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극복의 관점이다.
첫 번째 관점은 장애인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피동적 존재로 가둔다. 특혜를 받는 존재이니만큼 더 도덕적이고 솔선수범하며 비장애인들에게 보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은 장애인의 삶을 옥죈다. 비장애인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때로 나태할 자유를 누리지만, 장애인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늘 ‘모범생’의 가면을 써야 한다.
두 번째 관점은 장애인을 ‘불굴의 승리자’로 신화화한다. 한쪽 다리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정작 장애인이 편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를 개발하거나 보급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시중에서 몇천 원이면 사는 참고서를 몇 달이 지나서야 점자로 받아볼 수 있는 현실에서, 시각장애인의 대학 진학은 ‘승리’로 포장되지만, 그 뒤의 처절한 몸부림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사회는 ‘장애 극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장애인을 가두고, 시스템의 부재를 개인의 의지로 메우라고 강요한다.
여러 해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든 ‘미투(Me Too)’ 캠페인은 이러한 프레임의 전환을 시사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었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라는 자기 검열과 자책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연대는 그 잘못의 화살이 개인이 아닌 잘못된 구조와 가해자에게 향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통해 강요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듯, 장애인 역시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사회적 장벽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장애인의 재활과 사회 참여에 개인의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애가 ‘숙명적인 수고로움’이나 ‘불평등한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굳이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지 않아도,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한 시민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다.
차가운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 다가오는 봄에는 장애라는 프레임에 갇혀 눈물 흘리는 이들이 없는, 모두가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존엄을 온전히 지키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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