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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판 도가니" 보호라는 이름 아래 일어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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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857회 작성일 26-03-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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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강화됐지만 폐쇄적 시설구조·형식적, 감독 여전히 인권침해 반복
색동원 사건 개인범죄 넘어 권력집중, 인권감수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양희 입력 2026.03.12 14:17 수정 2026.03.12 14:18

그러나 최근 인천 강화의 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서 제기된 성폭력 의혹은 그 믿음을 다시 흔들었다. 시설장이 여성 거주 장애인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과 다수의 피해 진술은, 문제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사건을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장애여성은 장애와 여성이라는 두 축의 차별이 교차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시설이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서 이 교차성은 더욱 심화된다. 중증 장애여성은 이동, 의료, 위생, 외출 등 일상 전반을 시설과 종사자에게 의존한다. 시설장은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거주인은 생존 자체를 그 권력에 기대야 한다.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성폭력은 단순한 성적 범죄를 넘어, 돌봄 권력과 성별 권력이 결합된 지배의 형태로 작동한다.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이 동시에 통제자가 되는 구조에서 피해자는 쉽게 고립된다. 신고는 곧 생활 터전을 잃을 위험을 의미하고, 문제 제기는 보복이나 낙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거나 인지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고 입증하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장벽이 된다. 장애여성의 진술은 종종 과소평가되거나 의심의 대상이 되며, 시설의 명예와 운영 안정이 개인의 안전보다 우선되는 분위기 속에서 고통은 뒷전으로 밀린다.

관리·감독 체계 역시 젠더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왔다. 사전 통보식 점검과 서류 중심의 평가는 일상적 권력관계를 드러내기 어렵다. 성폭력 예방 교육이나 인권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실제 생활공간에서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여성 거주인의 사생활과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는지는 면밀히 살피지 못한다. 그 결과, 폭력의 징후가 내부에서 제기되더라도 근본적 조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 문제의 밑바탕에는 여전히 ‘보호’ 중심의 사고가 자리한다. 장애여성은 위험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통제와 격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보호를 이유로 닫힌 공간은 동시에 외부의 감시와 견제에서도 멀어진다. 선택권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권력이 집중되고, 집중된 권력은 남용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해법은 처벌 강화의 반복에 머물 수 없다.

첫째, 수용 중심의 대규모 거주시설 모델을 지역사회 기반 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주거와 활동지원, 상담과 의료 서비스를 지역사회 안에서 분산 제공함으로써 특정 시설이나 관리자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선택권과 이동권이 보장될 때 권력은 분산된다.

둘째, 외부 독립기구에 의한 상시적이고 비공개적인 인권 모니터링을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장애여성 당사자와 여성 인권 전문가가 참여하는 점검 체계를 통해, 성별과 장애가 교차하는 지점의 위험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셋째, 피해자 보호를 실질화해야 한다. 안전한 분리 조치, 임시 주거 지원, 법률·심리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신고가 곧 생존의 위협이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장애여성은 보호의 객체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다. 그들의 몸과 삶은 타인의 선의에 의해 관리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존중받아야 할 영역이다.

도가니 이후 우리는 법을 바꾸었다. 그러나 색동원 사건은 묻는다. 우리는 구조를 얼마나 바꾸었는가. 반복되는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차별과 권력의 구조가 유지되는 한 비극은 되풀이된다. 이제는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제도를 재설계하고, 일상의 권력을 감시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이라는 약속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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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김양희 ena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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