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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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8,141회 작성일 25-10-13 15:04본문
기자명에이블뉴스 입력 2025.10.13 08:25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 관련 실제 경험담을 갖고있는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필 공모전이다. 밀알복지재단이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했으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2023년부터 함께하고 있다.
공모전 결과, 김현지 씨의 ‘내 동생의 쓸모’가 일상부문 대상, 박항승 씨의 ‘장애가 있는, 그래서 더 가까운 특수교사입니다’가 고용부문 대상, 박주환 씨의 '숫자 2의 기적'이 아동 부문 대상 등 총 43개 작품이 수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3편, 최우수상 5편, 우수상 9편 등 17편을 소개한다. 열세번째는 고용부문 우수상 ‘나도 누군가의 혜린 언니가 되고 싶다'다.
나도 누군가의 혜린 언니가 되고 싶다
혜린 언니는 내 ‘선배’였다
카페 첫 출근 날, 나는 생각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음료 만드는 법도 외워야 하고, 손님 응대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던 건 ‘혜린 언니’라는 이름이었다. 사장님은 면접 마지막에 조심스레 말 했다. “우리 카페엔 발달장애를 가진 직원도 함께 일해요. 괜찮으시겠어 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네”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어떤 표정 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내 자신이 더 낯설었다. 언니는 그날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이에요? 나도 처음엔 진짜 힘 들었어요.”
말투는 조금 느렸고, 시선은 종종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건 그저 언니만의 리듬이었다. 계산을 하다가 멈칫할 때도 있었고, 음료 이름을 헷 갈려 다시 묻는 일도 잦았지만, 언니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누구보다 천천히 정확하게 일을 익혀갔다.
하루는 내가 실수로 우유를 쏟아 당황하고 있을 때, 언니가 냅킨을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처음엔 다 그래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 말에 순간 울 컥했다.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언니에게서, 나는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 카페에서 나는 신 입이고, 언니는 ‘선배’라는 것. 언니는 나보다 먼저 이 일을 시작했고, 나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나보다 더 따뜻하게 일하고 있었다. 언 니의 방식은 느렸지만 정확했고, 그 속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인내와 책 임감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니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장애인 직원’이 아니라, 그저 나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동료로. 그리고 함께 걷는 일이라는 게, 속 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말하던 ‘이해’는 이런 거였을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카페 문 앞에 작은 우산 하나가 놓여 있 었다. 그 아래 익숙한 뒷모습. 혜린 언니였다. 평소보다 20분이나 일찍 도 착한 언니는, 젖은 발로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가 오늘 일찍 깨웠어요. 비 오면 길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고요.” 언니의 말에 나는 웃 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언니의 ‘엄마’가 궁금해졌다.
며칠 뒤, 마침 교대 시간에 언니 어머니가 카페로 들어오셨다. 유난히 조용한 인상의 분이었고, 언니보다 먼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셨 다. “우리 혜린이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요.” 순간 당황했다. 나는 단지 같 이 일하고 있을 뿐인데, 그 말은 너무 큰 감사처럼 느껴졌다.
“사실은요… 어디서든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실수 한 번이면 책임은 큰 데, 이해는 잘 안 되니까요. 아이가 실수한 게 아니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 말은 낮게 깔렸지만, 내 마음엔 크게 울렸다.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손님이 언니를 보며 피식 웃고 갔던 순간, 다른 알바생이 뒤에서 언니 흉 을 봤던 날, 그리고 그때 나는 조용히 커피 잔만 닦고 있었던 나 자신까 지.
엄마는 어릴 때 늘 “남을 이해하렴”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착한 사 람이 되는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이해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척하며 거리를 두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리에 서보려는 노력 그 자체라는 것을. 카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괜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 다. “엄마, 이해한다는 게 뭘까?” 엄마는 웃으며 물었다. “왜, 누가 너 힘들 게 했어?” 아니, 힘들게 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제는, 나 혼자만 편한 자리에 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언니, 혹시 이거 다시 만들 수 있어요?”
주문이 바뀌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아차린 언니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이 깨진 것도, 손님이 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 었지만, 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퇴근하고 나서, 나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언니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작아졌을까?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왜 아무 말 도 못 하고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다음날, 다른 알바생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장애인 알바생이랑 같이 일하면 피곤하잖아요. 말도 느리고… 좀 불편하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단호하게 반박하지 못했다. “글쎄, 뭐… 그래도 열심히 하 시잖아” 정도의 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내 말 속에 은근히 깔 려 있던 거리감을 스스로 느껴버렸다. ‘그래도’라는 말이, 얼마나 나도 모 르게 위에서 바라보는 말이었는지를.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오래전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을 떠올 렸다. ‘편견은 누군가를 모를 때보다, 안다고 착각할 때 더 깊어진다.’ 나는 내가 이해한다고, 다름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정 말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간 적이 없어서 생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사실 언니 때문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정해 놓은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어색해하는 내 마음 때문이었다. 말이 느 린 것,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표정이 다소 낯설게 보이는 것— 그 모든 건 그냥 ‘다른 방식’일 뿐인데, 나는 그걸 ‘틀린 방식’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더 느긋하게 대화하고, 언니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자잘한 실수에도 무심한 듯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내가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거였다. 그냥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일 뿐이라는 감각이, 이제는 내게 더 편해졌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 하나로 충분했다
카페 한쪽 벽엔 손글씨로 적은 직원 당번표가 붙어 있었다. 내 이름 옆 엔 늘 ‘혜린 언니’의 이름이 같이 적혀 있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 고 했던가. 매주 둘이 맞는 날이 많아질수록, 일하는 시간도 점점 편해졌 다. 언니는 손님 이름을 잘 기억했다. 라떼를 연하게 마시는 단골 아저씨, 시나몬 파우더를 잊지 말아달라는 학생 손님, 설탕을 빼달라는 아주머니까 지. 언니는 작은 메모지에 조용히 그걸 써두고, 다음에 올 때마다 먼저 물 어봐줬다. “오늘도 진하게 드릴까요?”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천재네~”
나보다 느리고, 말도 더듬고, 때론 헷갈리지만—언니는 그 누구보다 세 심하게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빠르고 정확하게’만 해내면 된다고 믿어왔던 걸까. 하지만 언니는 ‘기억해주고, 기다려주고, 다 정하게 물어봐주는’ 그 일들이 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었 다. 어느 날, 내가 몸이 안 좋아 교대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계속 사장님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언니가 말했다. “저 괜찮아요. 은아 씨 평소에 도와줬잖아요.” 그 말에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내가 무언가를 ‘해줬다’고 생각했던 모 든 순간들이,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함께해준’ 시간이었던 것이 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점점 더 ‘장애’라는 단어를 잊어갔다. 처음엔 조심스러 웠던 모든 말과 행동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것은 노력해서 적응한 결과가 아니었다. 함께 일하고 웃고, 실수하고 메워주면서 만들어진 일상 의 힘이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터 에서 꼭 같은 조건을 가져야만 동료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매일 각자 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고, 때로는 서로의 실수를 채워주며 하루를 마무 리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언니와 나는 ‘충분히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었다.
나도 누군가의 혜린 언니가 되고 싶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끝난 날, 언니는 내가 준 손편지를 가방에 소중히 넣 었다. “이거 집에 가서 두 번 읽을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몰래 웃 고 말았다. 고작 몇 달 함께 일했을 뿐인데, 나는 언니 덕분에 아주 긴 시 간을 걸어온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장애인 고용’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도나 정책보다 먼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서툴지만 따뜻했던 말투, 메모지 한 장에도 정성 을 담던 손, 실수 앞에서 눈을 피하던 그 순간들까지. 나는 누군가를 통해 변화했고, 그 변화는 다시 나를 일상으로 이끌어주었다.
장애라는 단어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예외’로 여겨지고 있지만, 나는 안다. 진짜 문제는 몸이나 마음의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대하는 시선이라는 걸. 혜린 언니는 그걸 내게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다. 말로 가르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사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 는 눈을 잃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게 조금 낯설거나 불편하게 보이는 사 람이 있더라도, 나는 먼저 다가가 묻고 싶다. “오늘도 잘 지냈어요?”라고. 아마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때때로 또 실수도 할 것이다. 그래도 지 금은 마음 한편에 분명한 다짐이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때, 옆에서 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사람.
누군가에게 혜린 언니 같은 ‘존재’가 되는 것—그게 내가 이 경험을 통 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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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 관련 실제 경험담을 갖고있는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필 공모전이다. 밀알복지재단이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했으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2023년부터 함께하고 있다.
공모전 결과, 김현지 씨의 ‘내 동생의 쓸모’가 일상부문 대상, 박항승 씨의 ‘장애가 있는, 그래서 더 가까운 특수교사입니다’가 고용부문 대상, 박주환 씨의 '숫자 2의 기적'이 아동 부문 대상 등 총 43개 작품이 수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3편, 최우수상 5편, 우수상 9편 등 17편을 소개한다. 열세번째는 고용부문 우수상 ‘나도 누군가의 혜린 언니가 되고 싶다'다.
나도 누군가의 혜린 언니가 되고 싶다
혜린 언니는 내 ‘선배’였다
카페 첫 출근 날, 나는 생각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음료 만드는 법도 외워야 하고, 손님 응대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던 건 ‘혜린 언니’라는 이름이었다. 사장님은 면접 마지막에 조심스레 말 했다. “우리 카페엔 발달장애를 가진 직원도 함께 일해요. 괜찮으시겠어 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네”라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어떤 표정 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내 자신이 더 낯설었다. 언니는 그날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이에요? 나도 처음엔 진짜 힘 들었어요.”
말투는 조금 느렸고, 시선은 종종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건 그저 언니만의 리듬이었다. 계산을 하다가 멈칫할 때도 있었고, 음료 이름을 헷 갈려 다시 묻는 일도 잦았지만, 언니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누구보다 천천히 정확하게 일을 익혀갔다.
하루는 내가 실수로 우유를 쏟아 당황하고 있을 때, 언니가 냅킨을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처음엔 다 그래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 말에 순간 울 컥했다.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언니에게서, 나는 도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 카페에서 나는 신 입이고, 언니는 ‘선배’라는 것. 언니는 나보다 먼저 이 일을 시작했고, 나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나보다 더 따뜻하게 일하고 있었다. 언 니의 방식은 느렸지만 정확했고, 그 속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인내와 책 임감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니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장애인 직원’이 아니라, 그저 나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동료로. 그리고 함께 걷는 일이라는 게, 속 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말하던 ‘이해’는 이런 거였을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카페 문 앞에 작은 우산 하나가 놓여 있 었다. 그 아래 익숙한 뒷모습. 혜린 언니였다. 평소보다 20분이나 일찍 도 착한 언니는, 젖은 발로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가 오늘 일찍 깨웠어요. 비 오면 길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고요.” 언니의 말에 나는 웃 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언니의 ‘엄마’가 궁금해졌다.
며칠 뒤, 마침 교대 시간에 언니 어머니가 카페로 들어오셨다. 유난히 조용한 인상의 분이었고, 언니보다 먼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셨 다. “우리 혜린이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요.” 순간 당황했다. 나는 단지 같 이 일하고 있을 뿐인데, 그 말은 너무 큰 감사처럼 느껴졌다.
“사실은요… 어디서든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실수 한 번이면 책임은 큰 데, 이해는 잘 안 되니까요. 아이가 실수한 게 아니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 말은 낮게 깔렸지만, 내 마음엔 크게 울렸다.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손님이 언니를 보며 피식 웃고 갔던 순간, 다른 알바생이 뒤에서 언니 흉 을 봤던 날, 그리고 그때 나는 조용히 커피 잔만 닦고 있었던 나 자신까 지.
엄마는 어릴 때 늘 “남을 이해하렴”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착한 사 람이 되는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이해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척하며 거리를 두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리에 서보려는 노력 그 자체라는 것을. 카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괜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 다. “엄마, 이해한다는 게 뭘까?” 엄마는 웃으며 물었다. “왜, 누가 너 힘들 게 했어?” 아니, 힘들게 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제는, 나 혼자만 편한 자리에 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언니, 혹시 이거 다시 만들 수 있어요?”
주문이 바뀌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아차린 언니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이 깨진 것도, 손님이 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 었지만, 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퇴근하고 나서, 나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언니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작아졌을까?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왜 아무 말 도 못 하고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다음날, 다른 알바생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장애인 알바생이랑 같이 일하면 피곤하잖아요. 말도 느리고… 좀 불편하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단호하게 반박하지 못했다. “글쎄, 뭐… 그래도 열심히 하 시잖아” 정도의 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내 말 속에 은근히 깔 려 있던 거리감을 스스로 느껴버렸다. ‘그래도’라는 말이, 얼마나 나도 모 르게 위에서 바라보는 말이었는지를.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오래전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을 떠올 렸다. ‘편견은 누군가를 모를 때보다, 안다고 착각할 때 더 깊어진다.’ 나는 내가 이해한다고, 다름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정 말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간 적이 없어서 생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사실 언니 때문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정해 놓은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어색해하는 내 마음 때문이었다. 말이 느 린 것,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표정이 다소 낯설게 보이는 것— 그 모든 건 그냥 ‘다른 방식’일 뿐인데, 나는 그걸 ‘틀린 방식’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더 느긋하게 대화하고, 언니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자잘한 실수에도 무심한 듯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내가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거였다. 그냥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일 뿐이라는 감각이, 이제는 내게 더 편해졌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 하나로 충분했다
카페 한쪽 벽엔 손글씨로 적은 직원 당번표가 붙어 있었다. 내 이름 옆 엔 늘 ‘혜린 언니’의 이름이 같이 적혀 있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 고 했던가. 매주 둘이 맞는 날이 많아질수록, 일하는 시간도 점점 편해졌 다. 언니는 손님 이름을 잘 기억했다. 라떼를 연하게 마시는 단골 아저씨, 시나몬 파우더를 잊지 말아달라는 학생 손님, 설탕을 빼달라는 아주머니까 지. 언니는 작은 메모지에 조용히 그걸 써두고, 다음에 올 때마다 먼저 물 어봐줬다. “오늘도 진하게 드릴까요?”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천재네~”
나보다 느리고, 말도 더듬고, 때론 헷갈리지만—언니는 그 누구보다 세 심하게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빠르고 정확하게’만 해내면 된다고 믿어왔던 걸까. 하지만 언니는 ‘기억해주고, 기다려주고, 다 정하게 물어봐주는’ 그 일들이 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었 다. 어느 날, 내가 몸이 안 좋아 교대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계속 사장님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언니가 말했다. “저 괜찮아요. 은아 씨 평소에 도와줬잖아요.” 그 말에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내가 무언가를 ‘해줬다’고 생각했던 모 든 순간들이,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함께해준’ 시간이었던 것이 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점점 더 ‘장애’라는 단어를 잊어갔다. 처음엔 조심스러 웠던 모든 말과 행동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것은 노력해서 적응한 결과가 아니었다. 함께 일하고 웃고, 실수하고 메워주면서 만들어진 일상 의 힘이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조건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터 에서 꼭 같은 조건을 가져야만 동료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매일 각자 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고, 때로는 서로의 실수를 채워주며 하루를 마무 리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언니와 나는 ‘충분히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었다.
나도 누군가의 혜린 언니가 되고 싶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끝난 날, 언니는 내가 준 손편지를 가방에 소중히 넣 었다. “이거 집에 가서 두 번 읽을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몰래 웃 고 말았다. 고작 몇 달 함께 일했을 뿐인데, 나는 언니 덕분에 아주 긴 시 간을 걸어온 기분이었다.
이제 나는 ‘장애인 고용’이라는 말을 들으면, 제도나 정책보다 먼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서툴지만 따뜻했던 말투, 메모지 한 장에도 정성 을 담던 손, 실수 앞에서 눈을 피하던 그 순간들까지. 나는 누군가를 통해 변화했고, 그 변화는 다시 나를 일상으로 이끌어주었다.
장애라는 단어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예외’로 여겨지고 있지만, 나는 안다. 진짜 문제는 몸이나 마음의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대하는 시선이라는 걸. 혜린 언니는 그걸 내게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다. 말로 가르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사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 는 눈을 잃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게 조금 낯설거나 불편하게 보이는 사 람이 있더라도, 나는 먼저 다가가 묻고 싶다. “오늘도 잘 지냈어요?”라고. 아마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때때로 또 실수도 할 것이다. 그래도 지 금은 마음 한편에 분명한 다짐이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때, 옆에서 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사람.
누군가에게 혜린 언니 같은 ‘존재’가 되는 것—그게 내가 이 경험을 통 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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