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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인 인터뷰, 백지윤의 변신 '발레리나에서 연극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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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1,030회 작성일 26-03-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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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은 태어나자마자 호흡을 잘 못해 신생아실에서 곧바로 검사실로 이동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실시했기에 다운증후군 진단을 일찍 받았다. 보통 발육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큰 병원을 찾기 때문에 두세 살이 지나 진단을 받는 경우와는 다르다.

의사는 다운증후군이 21번째 염색체 이상으로 생긴 질병이라고 하면서 평형 감각도 부족하고 근력이 약해 걸음이  안정되지 않고 지능지수가 떨어져 지적장애를 동반하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엄마 눈에는 딸이 너무도 귀엽게 생겨서 그런 말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지윤은 병치레가 잦았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증상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았다. 한쪽 눈에 난시, 원시, 근시가 다 있어 무대에 설 때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건 꿈도 못 꾼다. 질식사의 위험을 줄이려고 혀 절개 수술까지 받았다.

지윤은 성장을 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즐겼다. 4~5시간씩 노래하고 춤을 춰도 지칠 줄 모른다. 엄마가 ‘지윤의 하루 생활의 80%가 노래와 춤’이라고 할 정도로 지윤은 낙천적이다. 수영을 하며 체력을 단련시켰고, 요즘은 태권도에 푹 빠져 있다.

발레로 즐거운 지윤


 발레 연습과 공연중인 지윤. ⓒ백지윤
지윤이 처음 장애를 인지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반 친구가 ‘너 다운이냐?’라고 물어보면서부터이다. 지윤은 집에 오자마자 ‘내가 다운이야?’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놀랐지만 딸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다른 사람보다 생각 주머니가 조금 작은 것뿐이야. 네가 진심으로 친구들을 대하면 아이들도 너를 좋아할 거야.”

엄마는 지윤이 다섯 살 때 이미 장애인등록을 하고 복지카드를 받았지만 지윤이에게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장애야말로 스스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3세 때 ‘호두까기 인형’을 본 지윤은 발레 동작을 흉내내며 발레를 하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래서 엄마는 지윤을 발레학원에 보냈지만 6~7개월이 지나도 지윤이 발끝으로 서 있는 동작조차 못해서 그만두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스트레스가 심했다. 자기 손가락 끝을 물어뜯어 살이 패일 정도였 다. 그때 지윤이가  ‘엄마, 발레를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음악을 들으며 연습을 할 때는 집중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생긴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여 다시 발레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윤은 필리핀 발레학교에서 발레와 현대무용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귀국하여 매년 5월에 열리는 전국장애인댄스대회에 참가했는데 그때 지윤을 눈여겨본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으로부터 국립발레단 아카데미 오디션 참가를 제안받았다. 아카데미에 합격한 지윤은 비장애인들과 함께 연습하며 발레를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지윤에게는 발레가 유일한 친구이며 자기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제 아이들의 따돌림이 두렵지 않았다. 다운증후군 소녀가 짧은 팔을 쭉쭉 뻗으며 진지하게 발레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여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지윤을 소개했다. 지면은 물론이고 방송에서도 앞다투어 지윤의 당당한 발레 도전을 알렸다.

첫 번째 관문 대학 입학


 대학 졸업 및 활동사진. ⓒ백지윤
지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입시 준비를 시작하였다. 전공은 당연히 무용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무용학과가 있는 대학교 명단을 만들어 일일이 전화를 하고 입학상담을 요청하여 그동안의 활동 자료를 들고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하지만 대학의 무용학과에서는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입학한 적이 없다면서 지윤이 대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만 늘어 놓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 콩쿠르 여자 고등부 발레 동상 수상으로 대학 입학에 가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실망하는 딸에게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어, 방법을 찾아보자.”

지윤이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아보면서 사이버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11년,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 무용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것만 갖고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여 국가전문자격시험을 보고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장애가 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누려야 할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며 지원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15년, 지윤은 어렵게 입학한 대학을 졸업하며 이런 소감을 밝혔다.

“발레리나라의 꿈을 이뤄 나가는 데  장애는 방해물이 아닌 동반자예요. 무대에서 행복하게 춤추는 발레리나로 영원히 남고 싶어요.”

예술인으로 활동


 드라마 고고송 제작발표회 중. ⓒ백지윤
지윤은 2010년 7월에 열린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 콩쿠르에서 비장애인과 겨루며 고등부 동상을 수상하여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 1월에는 평창스페셜올림픽 문화행사로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열린 발레 <지젤>에서 청순한 시골 처녀 지젤의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해 ‘기적의 지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엄마는 그날의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공연은 지윤이에게 의미있고 아름다운 무대였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리나들과 한자리에서 공연할 수 있었고, 분야는 다르지만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전 세계 발달장애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 큰 기쁨이었죠.”

2019년 CGN TV 본격 액션드라마 <고고송>에 배우로 캐스팅되었는데, 이미 2005년 영화 <사랑해, 말순씨>에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강민휘와 커플 연기를 했다. 백지윤의 예쁜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2020년 유튜브 채널 피플지TV의 <라라쌤과 함께 영어배우기> 시리즈에 백지윤이 라라쌤과 함께 출연하여 영어 실력을 보여 주었는데 코로나19로 외출이 제한된 시기라서 많은 장애아동들이 즐겨 보는 동영상이 되었다.

2022년에는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서 <세 사람 이야기>라는 발레를 했다. 발레를 하면서 현대무용도 했기에 빛소리무용단 소속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024년 극단29동의 현대무용 작품 <넘어서는 의지> 공연에 참여했다.

그런데 지윤은 체형의 변화로 무용을 힘들어한다. 이제 자기 몸이 따라가주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그래서 몸을 덜 쓰는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 그때 그녀에게 찾아온 것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모두예술극장에서 기획한 연극 <젤리피쉬>이다.

연극 <젤리피쉬>로 날개를 달다


 연극 젤리피쉬 . ⓒ백지윤
연극 <젤리피쉬>는 27세 다운증후군 여성 켈리(백지윤)가 어느 날 바닷가에서 30대 비장애 남성 닐(김바다)과 사랑에 빠진 뒤 엄마 아그네스(정수영)와 갈등하며 사랑을 키워 가는 이야기이다.

다운증후군 여성의 사랑과 독립을 발랄하게 그린 영국 연극 <젤리피쉬>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공동 제작으로, 3월 18일부터 4월 13일까지 공연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젤리피쉬>는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 원작으로, 2018년 영국 런던 부시시어터 초연부터 영국 최고의 권위 있는 언론인 가디언지에서 ‘현실을 반영한 섹시 로맨틱 코미디’라는 호평을 받았다. 영국 내셔널시어터(2019), 호주 뉴시어터(2023) 공연까지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연으로 우리도 다운증후군 배우 백지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였다.

연출을 맡은 민새롬 감독은 ‘지윤 씨가 암기력도 탁월한데 추상적 단어를 어려워해서 작품 줄거리를 프린트하여 벽에 붙여 놓으니 지윤 씨뿐 아니라 다들 시각적 이해도가 높아졌다.’ 라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엄마 역을 맡은 정수영은 ‘지윤은 본능적인 배우’라며 ‘한 달 만에 눈동자를 마주쳤는데 정말 맑았다. 켈리 대사가 100% 다가와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정수영 배우는 ‘<젤리피쉬>가 세상의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하였다.

언론은 물론 연극 평론가들이 관심을 갖고 <젤리피쉬>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장애‧비장애 이야기가 아닌 경계와 편견을 허물고 각자의 사정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이주영 평론가).

이해와 배려가 느껴지는 비연극적 요소가 연극 <젤리피쉬>의 여백을 채워 관객들에게 온전한 충만함을 준다. 모두에게 꼭 권하는 작품이다(박병성 컬럼니스트).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연극 <젤리피쉬>를 관람하기 위해서이다.

장애인 공연의 가장 큰 아픔이었던 관객의 외면이란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듯하다.

작품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연출은 대단하고 극장도 모든 관객에게 서비스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젤리피쉬>를 성공시킨 것은 역시 관객이다.

그런데 어떻게 관객이 들기 시작했을까? 바로 바이럴 마케팅이다. 한 크리에이터가 <젤리피쉬>를 보고 짧은 영상을 올리면서 관람 소감을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극 <젤리피쉬> 홍보영상 조회수가 쭉쭉 올라가면서 확장성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젤리피쉬>가 가져다 준 변화


 인터뷰 중. ⓒ백지윤
“지윤이가 대본을 들고 살아요. 한번은 지윤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내 머릿속에 젤리피쉬 대본이 있는 것 같아 요.’ 지윤이가 그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어요. 공연 중에 한 번 토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끝까지 공연을 했다고 해서 제가 물어봤어요. 아픈데 어떻게 공연을 했느냐구요. 그랬더니 관객들이 자기를 보려고 왔는데 어떻게 안할 수가 있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더라구 요. 끝까지 마무리하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아빠는 지윤이가 2시간 동안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뿌듯해했다.

<젤리피쉬> 공연을 하면서 지윤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발달장애의 특성상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어 입을 꾹 다물고 표현을 안 해서 사람을 숨막히게 했었는데 이제는 표현을 한다. 딸의 변화로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아빠가 매우 좋아한다. 지윤이도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걸 알고 있다.

“엄마, 내가 발음이 너무 좋아졌고, 사람들하고 관계가 자연스러워져서 좋아요.”

학교에 다닐 때부터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개를 보면 지윤이는 그 자리에 멈춰 있다. 그래서 1년 전에 시골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친밀해지도록 조금씩 연습 중에 있다.

장애인연극을 하다 보면 객석에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개를 보면 긴장을 하지만 차차 좋아질 것이다.

“사실 지윤이는 무대에 서면서 자신이 유명해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자신이 연기를 해냈다는 것이 즐거운 거예요.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지윤이한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염려가 되죠. 요즘은 보니까 기업에서 장애예술인들을 고용하는데 무용은 그런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조금 안정적으로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연을 보신 분들이 연극 내용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세요. 저는 지윤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그 감정을 느껴 보고 그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본인도 연애까지는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두 살 아래 남동생이 누나의 든든한 지원자이다. 현재는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누나를 챙기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며 누나를 돌보고 있다.

“한번은 지윤이를 돌보다 힘들어서 제가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그때 호성이가 여섯 살이었는데 저더러 ‘엄마, 누나에게 장애가 있는 건 우리 가족이 다 알잖아. 엄마가 참아야 돼.’라고 해서 깜짝 놀랐죠.”

이렇듯 백지윤은 가족을 비롯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당당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지윤

2015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무용학과 졸업

2010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 콩쿠르 여자고등부 클래식발레 동상

2010 디지털문화예술대학교 클레식발레 동상

 

2024~2025 연극 <젤리피쉬>

2023~2024 <넘어서는 의지>

2022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공연 <세 사람 이야기>

2021 <품바야>

2021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개막공연 <열두 개의 문>

2020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공연 <바다에 뜬 별>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축하공연 등

 

2020 피플지TV <라라쌤과 함께 영어배우기>(시리즈 10회 출연)

2019 드라마 <고고송> 출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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