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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보장법 이후, 발달장애인의 노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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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438회 작성일 26-03-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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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장애를 개인의 손상만이 아니라 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고, 존엄권·평등권·자기결정권 등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다 분명하게 담으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장애정책을 시혜와 보호의 언어가 아니라 권리의 언어로 다시 세우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분명 반가운 진전이다.

이 변화는 중요하다.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다시 호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법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기준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이후, 발달장애인의 노후는 실제로 얼마나 달라질까.

진호 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병원 동행을 해줄 사람, 지금 사는 집과 동네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지역사회 지원, 나이가 들어도 끊기지 않는 낮활동, 몸이 아프거나 우울할 때 의료·돌봄·주거가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 체계,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없어도 나는 버려지지 않는다”는 예측 가능한 삶의 구조다.

권리는 문장 속에 적혀 있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권리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법안을 환영하면서도 우리는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것인가. 중고령 발달장애인의 노후는 장애정책 안에서 어떻게 다뤄질 것인가. 부모 사후의 삶은 권리보장의 범주 안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설계되고 있는가.

특히 발달장애인의 삶에서 ‘늙어감’과 '부모사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의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지 신체 기능이 변한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도 함께 늙고 있다는 뜻이며, 익숙한 돌봄과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고, 어느 날 갑자기 삶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의 노년기를 여전히 주변부에 두고 있다. 청년기 자립 지원도 충분하지 않지만, 중장년기 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는 훨씬 더 희미하며, 밑그림 자체가 부재하다. 권리의 문장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생애주기 지원은 늘 뒤처진다.

이번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은 분명 의미가 크다. 그러나 법 제정만으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실제 삶을 바꾸려면 그 법이 어떤 제도와 서비스, 어떤 지역사회 체계로 이어질 것인지가 중요하다. 권리보장법이 진정한 힘을 가지려면 이동권과 접근권, 자립생활과 학대예방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어디에서 늙어갈지, 누구와 관계를 이어갈지, 상실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할지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 그래야 권리는 삶의 마지막 구간에서도 끊기지 않는다.

진호 님 어머니의 질문,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하지?”는 한 가정의 개인적 불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지역사회에 던지는 공적인 질문이다. 권리보장법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답해야 한다. 부모의 죽음이 곧 삶의 붕괴가 되지 않도록, 나이 들수록 더 고립되지 않도록, 살아온 지역에서 존엄을 지키며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법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 통과를 반기면서도 한 가지를 더 요구하고 싶다. 이 법의 다음 문장은 반드시 중고령 발달장애인의 삶이어야 한다. 자기결정 지원, 지역사회 기반 주거, 건강과 돌봄의 연계, 부모 사후 지원체계, 사별과 애도에 대한 이해, 죽음 준비 교육까지 포함한 생애후반기 지원이야말로 권리를 현실로 만드는 마지막 퍼즐이기 때문이다.

권리는 선언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존엄은 한 사람이 늙어가고, 상실을 겪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버려지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장애인의 오늘만이 아니라 장애인의 늙어감과 미래까지 지켜내는 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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