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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되자 아들에게 쌍둥이 친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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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10,140회 작성일 25-06-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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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온 수호 천사가 또 여기 있었구나
기자명칼럼니스트 장윤경 입력 2025.06.10 15:13 수정 2025.06.11 11:49
학부모 총회, 50대 중반 새 담임 선생님의 강단 있는 말씀 한마디에 2학년 총회에 참석한 엄마들은 토끼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그야말로 내 마음은 유쾌 상쾌 통쾌했다. 누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절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던 초 1학년, 학급 내 벌어졌던 많은 마음의 짐들이 2학년이 되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초등 저학년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교육 열정은 정말이지 하늘을 찌른다. 이렇다 보니 반 모임을 통해 교육 정보부터 학급 내 돌아가는 상황 뒷이야기까지 반 모임과 단톡방은 그야말로 엄마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장애 엄마에게 반 모임과 단톡방은 늘 좌불안석이요, 다녀오면 마음이 파김치인. 이 고민을 구세주처럼 멋지게 나타난 새 50대 담임 선생님 덕분에 한 방에 해결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나를 위해 오신 슈퍼우먼 아니 여전사셨다. 그렇게 이화랑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이 그날부터 시작됐다.

학부모 총회 날 별도로 엄마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따로 있지 않았음에도 새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뒤 나 스스로 아들의 장애를 당당히 밝혔다. 2학년 엄마들은 내 소개에 당황하는 눈빛과 안타까워하는 눈빛을 섞어 보내왔지만, 내 큰 눈은 마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여배우 이영애 눈빛을 흉내 내듯 ‘안타까워 말아요,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 너나 잘하세요.’라고 당당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답했다.

“저기요, 예준이 엄마라고 하셨죠? 그런데 전화번호가 뭐예요”

“아, 제 번호요?”

‘이 엄마는 누굴까?’ 집으로 향하는 나를 찾아와 번호를 먼저 묻는 학부형도 있었다.

아침 등굣길 우연히 만나며 인사하는 쌍둥이 형제는 예준이를 언제부턴가 집 앞에서 기다리려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께서도 특히나 쌍둥이 중 큰아이가 반에서 힘도 세고 체격이 좋아 반에서 급식실 갈 때마다 예준이를 챙기고, 예준이도 그 친구들에게 의지하며 학교생활을 한다고 하셨다.

나는 예준이를 챙겨주는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런데 쌍둥이들의 복장이 좀 남달랐다. 조금은 쌀쌀한 3월인데도 맨발에 샌들 그리고 반소매를 입고 있는 게 아닌가? 때때로 저녁 8시가 다 되어갈 때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며 ‘아직 저녁밥 안 먹었어요. 배고파요, 아줌마.’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될 때마다 나는 간식을 사주거나 밥을 먹여 집으로 보내곤 했다.

들리는 엄마들 소문에 쌍둥이의 엄마가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라며 내게 그 집 아이들과 예준이가 어울리지 못하게 하라는 소문도 들려왔지만, 장애아이를 키우는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4월의 봄, 현장 체험학습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하굣길에 조심스레 같은 반 쌍둥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낼 봄 소풍 가는데 아줌마가 예준이 도시락에 너희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김밥이랑 유부초밥 떡갈비 여유 있게 보낼 테니 같이 나눠 먹고 예준이랑도 같이 즐겁게 놀다 와.”

“정말요? 잘됐다. 이번 소풍에 편의점 김밥 안 먹어도 된다! 아줌마, 저희 엄마는 도시락 안 싸줘서 편의점에서 그냥 몇 개 사 가요. 원래는 외할머니가 싸주시는데 지금 할머니도 아프셔서 도시락 못 싸주세요.”

이 같은 말에 엄마들의 소문이 다시금 내 귓속에 매달렸다. 그리고 과일까지 넣어갈 3단 찬합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 엄마가 혹시 직장 다니시니?”

“아뇨, 우리 엄마 아파서 도시락 못 싸요. 아침에 만날 자고 있어서요. 엄마가 예전에 자꾸 뛰어내리라는 귀신 소리가 들려서 우리 엄마 6층에서 뛰어내리셨는데 지금 다리에 철심 박혀있어요. 그래서 걷는 거 힘들어요.”

“아, 그러셨구나. 지금은 괜찮으시니?”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내가 쌍둥이 엄마의 번호를 큰 아이게 물었다. 그리고 엄마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우연히 있을까? 나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학부모 총회 날 내 번호를 묻던 그녀였다. 그가 바로 쌍둥이의 엄마였다니!

대학생 때부터 이해인 수녀님처럼 시인이자 수도자가 꿈이던 나는 황학동 시장이며 종묘 거리 때론 종로에서 만난 사람들, 노숙자들에게 말 걸며 그들과의 이야기를 글로 쓰던 습관 탓일까? 나는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람들의 소문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여대 재학 시절, 도도한 여자들 속에만 있던 나는 학교 밖을 나가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기록하는 기자의 삶이 참 즐겁고 흥미로웠다.

쌍둥이의 엄마와 마주했다.

그녀와 나는 분명 학부형이라는 같은 주제로 학급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으나 1:1로 처음 마주한 내게 내 결혼반지를 껴보고 싶다며 빼달라고 했고 나와 눈 맞춤도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소풍 이야기가 10분 이상 유지가 어려울 때, 나는 여느 학부형과 같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려서 자폐를 알았다는 말을 당당히 하는 모습에 나는 놀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갑고 그녀의 용기를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내게 온 수호천사가 또 여기 있었구나.’

그녀는 내 예상대로 장애가 있었지만 이렇게 건강한 쌍둥이를 낳았고 학부형도 되었는가 하면 쌍둥이들이 또래보다 어른스럽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예준이가 쌍둥이 형제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녀야말로 내게 온 수호천사가 아니면 뭐라 할 것인가?

나와 같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라면 다들 동감할 것이다. 나 역시 예준이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만난 신경정신과 의사는 14명, 발달센터 방문경력 10년 이상, 정신과 논문도 몇 권 읽다 보니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이제 아들 또래 아동 혹은 사람을 만나면 발달장애인 유무를 파악하는 눈치가 자연스레 생겼다.

나는 그녀가 반가웠다. 바로 손에서 결혼반지를 빼주고 껴보라고 건네도 주고 안경도 껴보라고 보여줬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는지 잠시 또래인 나와 앉아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그녀가 나를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나도 예준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무조건 선입견으로 그녀와 같은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준이 덕분에 자폐인, 그리고 지적장애인이 얼마나 순수한지 그리고 그들의 세상이 티 없이 맑은지를 알고 있기에 설령 조현병 증상이 조금 있었더라도 나는 웃으며 받아줄 여유를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때로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나를 찾아오는가 하면 새벽 두 시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예준 엄마, 나한테 지금 당장 예준 엄마한테 전화하라는 소리가 들렸어요.”라는 말로 나를 가끔 당황하게 했지만. 그녀에게는 건강한 아이들이 있어 나처럼 아들에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그녀가 때로는 부러웠고, 대중목욕탕에서 만나면 부끄럽다고 피하는 게 아니라 반갑게 나를 안아주기까지 하는 용기가 참 순수하다 못해 나를 웃게 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말한 조현병 환자 집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역으로 누군가도 내 아들과도 어울리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조금 불편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선입견을 품을 필요는 없다. 분명, 친정어머니의 손길이 그녀와 쌍둥이 손자들에게도 필요해 보였지만 건강한 첫 딸에 쌍둥이 형제도 낳아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마냥 대단해 보였다.

때로는 우연히 아이를 위해 마트를 찾아 라면과 통조림을 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이 땅의 여느 평범한 ‘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를 보며 나도 이다음에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꿈같은 상상을 했으니 말이다.

때론 오히려 시기 질투로 장애 부모들 사이에 털어놓지 못하는 말을 그녀에게 때론 푸념도 하는 나 스스로가 신기하기도 했다. 남의 말을 옮기지 않고 자신의 기쁨에 충실하며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마냥 소녀 같은 표정이 참 너그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준이는 여전히 미술에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이 약물치료를 끊고 다시 나타나는 시각추구인데, 자칫 내가 어리석게 시각추구인 자폐 행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정신과 원장님과 다시금 마주해 있었다.

“저는 소아정신과 의사다 보니 사실, 예술의 미학이라는 것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예준이의 그림을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한다면 그냥 두시는 게 어떨까요? 예준이는 더는 약물치료가 필요 없으니 상담은 당분간 오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더 용기를 내 말 했다.

“아니요. 저희 아들은 약물이야 끊었지만, 원장님을 일 년에 봄, 가을로 두 번은 찾아뵈려고요. 제가 약물치료 없이 장애아이를 키우는 제 자신도 학기별로 점검받고 이제는 제 멘토가 되어 주셔야죠. 대부분 아이 약물치료 반응과 생활 어려움을 호소로 상담하는 엄마들이 많겠지만 기쁜 소식만 들고 오는 ‘최초의 엄마’가 될 테니 원장님, 저를 지켜봐 주시고 제 아들 이름 기억해 주세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내 목소리에 놀란 원장님은 엷은 미소를 보내셨다.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날 이후, 전국 미술 공모전을 스스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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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장윤경 black-c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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