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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왜 불안과 결단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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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547회 작성일 26-03-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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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삶은 오랫동안 두 개의 낡은 시선 속에서 해석되어왔다. 하나는 동정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치료와 교정의 시선이다. 겉으로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이 두 시선은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장애인을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보호하고 판단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못 본다는 점이다. 그래서 장애인의 삶은 늘 타인의 입장에서 먼저 설명되었다. 무엇이 더 안전한가,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 무엇이 더 관리하기 쉬운가가 말해졌고, 정작 장애인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는 뒤로 밀려났다. 바로 이 오래된 질서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애인의 삶은 단지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결핍의 문제로만 설명될 수도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삶은 복지 제도나 행정 절차의 문제이기 전에 먼저 ‘존재의 문제’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은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은 장애인의 삶에서 더욱 날카롭게 제기된다. 그러므로 자립생활 역시 단순한 서비스 체계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존재, 곧 현존재(Dasein)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세계 한가운데서 살아간다. 사회적 제도와 관계, 언어와 공간, 노동과 공동체 속에 이미 놓여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장애 역시 몸에만 갇힌 문제가 아니다. 장애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되는 현실이다. 어떤 사회가 어떤 몸을 정상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장애의 의미도 달라진다. 계단 중심의 도시, 접근하기 어려운 교통, 닫힌 정보, 배제적인 고용 구조는 장애를 개인의 몸에만 있는 결함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실존적 조건으로 만든다.

그래서 자립생활은 단순히 혼자 사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자립생활의 핵심은 혼자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와 태도에 있다. 활동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이동 보조가 필요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삶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삶의 방향까지 남에게 넘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립생활은 의존의 부정이 아니라, 의존의 현실 속에서도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바로 여기에서 하이데거의 ‘불안’ 개념이 중요해진다. 불안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공포는 대상을 향한다. 차별이 두렵고, 실업이 두렵고, 가난이 두렵고, 시설 수용이 두렵다. 그러나 불안은 하나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불안은 내가 발 딛고 서 있던 세계 전체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경험이다.

익숙하던 질서가 흔들리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다. 장애인의 삶에서 이 불안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너무 자주 하나의 시민으로 호명되기 전에 관리의 대상, 보호의 대상, 돌봄의 대상으로 먼저 불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전문가가 더 잘 안다고, 가족이 정해 주는 길이 더 안전하다고, 시설이 더 편하다고, 혼자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 익명의 언어는 마치 상식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한 인간의 삶을 타인의 틀 안에 가두는 힘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장애인은 묻게 된다. 왜 내 삶은 늘 남의 해석으로 먼저 시작되는가, 왜 나는 살아 있는 한 인간이기 전에 보호의 대상으로 불려야 하는가, 왜 나의 미래는 내 의지보다 사회적 제도와 가족, 전문가의 판단 속에서 결정되어야 하는가.

이 물음이 바로 불안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 불안은 병적인 흔들림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는 계기라 할 수 있다. 불안은 익숙한 거짓 평화를 깨뜨린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통제, 배려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침묵,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박탈된 선택권이 그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불안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만 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자기 존재 앞에 세우는 정조로, 자립생활의 출발 역시 여기에 있다. 자립생활은 제도가 먼저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각성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불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불안은 눈을 열어 주지만, 삶을 대신 살아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결단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결단성은 무모함이나 억지스러운 독립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한 채 환상을 선택하는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이미 주어진 조건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는 태도이다. 다시 말해 결단이란 전능함의 선언이, 내 삶을 남에게 넘기지 않고 내가 떠맡는 일이다.

이 점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결단의 문제이다. 자립생활은 “나는 아무 도움도 필요 없다”라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한다”라는 태도이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삶의 의미를 남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이것이 자립생활의 가장 깊은 뜻이다. 그러므로 자립생활운동은 단지 혼자 살기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삶을 자기 것으로 살기 위한 운동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단이 결코 고립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래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립은 혼자가 되는 일이 아니다. 자립은 함께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도 자기 선택권을 잃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활동지원, 이동권, 접근 가능한 정보, 교육권, 노동권은 단지 편의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들은 한 인간이 자기 삶의 가능성을 실제로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경사로 하나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지원 인력 한 사람은 단지 노동력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일상을 자기 뜻대로 조직할 수 있도록 돕는 자유의 매개이다. 접근 가능한 정보체계 역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권리를 현실로 만드는 통로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더 이상 복지 행정의 하위 항목으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자립생활은 인간이 자기 삶을 남의 해석 속에서 소비하지 않고, 스스로 떠맡는 방식이다. 그것은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이동하는 일이며, 더 깊게는 권리의 주체를 넘어 존재의 주체로 서는 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자립생활운동은 단순한 서비스 요구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이다. 장애인을 결핍의 존재로 보는 오래된 시선에 맞서,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자립생활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통제의 언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선택을 말하면서도 조건을 제한하고, 권리를 말하면서도 예산의 문제로 축소하며, 자립을 말하면서도 당사자의 목소리보다 전문가의 판단을 앞세운다. 그러나 자립생활의 본뜻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자립생활은 삶의 형식을 둘러싼 근본적인 물음이다. 장애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남이 정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일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란 장애인이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세계의 구조를 바꾸는 사회이다.

결국 자립생활은 완전한 독립이 아니다. 고립도 아니다. 자립생활은 불안을 통과하여 자기 삶의 진실을 만나고, 결단을 통해 자기 가능성을 선택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때 장애인의 삶은 더 이상 동정의 대상도, 교정의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단지 살아남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가장 치열한 실천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장애인을 대신 살아 주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자기의 삶을 자기 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와 공간과 언어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그것이 자립생활의 길이며, 인간 존엄의 길이고, 인간 사회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며, 그것이 바로 참다운 인간 실존의 길로써, 이 땅에서 장애인이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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