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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살롱

수필 [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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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874회 작성일 20-12-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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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은 어둠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을까?
대낮처럼 밝던 큰 길이었는데 지금도 아이러니 하다.
무심한 세월은 나에게 대못으로 파고드는 고통이었다.
어린 아들이 걸음마를 하며 넘어져 얼굴이 다 깍여 울며 들어 와도 나는 멀리서 볼뿐 넘어져 울며 나를 쳐다보던 어린 아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심한 세월 나보고 어쩌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뭘 어쩌란 말인가?
 이건 아니라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그만하고 싶었는데,
30년이라는 세윌이 흘러 나에게 있어 기쁨과 눈물 그리고 희망이었던 아들은 결혼해서 두 아이에 아빠로 남편으로 건설회사 부장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다.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손주에게 언제나 건강하게 잘 커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오늘날 나와 나에 아들이 있기까지 30년 전 난 참 하루하루를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20대 초반에 7개월 아들이 있었고 시댁 건물에서 난 미용실을 하며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어서 더 행복하게 산 것 같다.
남편은 군대를 늦게 들어갔지만 2스타 운전병으로 전출되어 남는 시간엔 나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매일 두통, 세통, 네통이 왔다. 우체부 아저씨는 내 편지 나르기 힘들다고 하셨다.
난 그때부터 커피 쿨피스 냉수 머리도 잘라 드리며 매일 반갑게 남편 편지를 받곤했다.
아들이 백일 때 동내잔치를 했다.
남편도 부대에서 휴가를 받아 나왔다.
백일은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
젊은 새댁들은 다들 부러워했다.
참 믿어지지 않는 짧았던 행복, 그 행복도 한순간에 꿈처럼 악몽으로 변했다.
죄짓고 살았기엔 어린 나이였는데, 왜 왜 내가 난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남편은 무슨 생각으로 스타차를 몰고 늦은 밤에 친구들과 나를 태우고 가로등 등불도 보이지 않는 온통 어둠뿐인 이곳으로 데려갔을까?
시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한마디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지금도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을 부모님과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행복하게 웃어도 본다.
30년 세월 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아들에 대한 사랑 이제는 한 번쯤 말해 보고 싶다.
아들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만져보고도 싶다.
용기가 필요한데 누구에게서 용기를 받을까?
나에게 있어 희망과 용기가 되어주시는 활동보조사 선생님 덕분에 꿈을 가져보게된다.
두 분 선생님은 나와 어떤 인연으로 만나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시는 걸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하며 두 분 선생님께 감사 또 감사하며......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나 이승에 삶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웃으며 웃으며 살고 싶다.
내 인생에서 이 작은 바람들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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